요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티비에서 보면, 신문을 보면, 남의 이야기에 의하면, 인터넷이나 SNS에 따르면.. 이라는 구절을 심심찮게 접합니다.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국면에서도 그렇죠.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상이란 것이 결국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었던 과거(의 어쩔수 없었던 상황)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탓이겠죠. 


그렇다보니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생길때가 종종 있어요. 어떤 단정적인 논조나 서술을 보면 그 배후를 의심하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고 어찌보면 무섭기도 한 세상이죠. 모든 것들의 진실이 점점 메타화 되어 가고 이야기들도 파편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요즘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뒤늦게 읽고 있습니다. 독서모임 주제 도서라 그동안 어떤 이유때문인지 못읽고 있던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어디선가 본 느낌이 드는거죠.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등장 인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전체적인 그림이 태피스트리처럼 맞춰지는 형식인데 화자가 다양하고 시점이나 철학, 관점들이 달라서 깊이있게 빠져드는 부분도 있지만 머릿속을 단어가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수다스럽지만 그래도 문장이며 단어가 참 정확하게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번역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각각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각자 이야기가 다른 작품이 떠올랐어요. 라쇼몽이라는 일본 작품이죠. 소설도 유명하지만 영화로 더 유명한 작품. 하지만 저는 라쇼몽을 읽은 적도 영화를 본적도 없습니다. 라쇼몽의 이야기도 구전되던 옛날 이야기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옮긴 것이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두가지 소설(라쇼몽과 덤불속)을 섞어서 그 스타일을 빌린 거라는 정도만 알죠.(그리고 이 영향은 홍상수의 오수정까지 이어진다고..) 여기에 생각이 미쳐서 언급에 대한 언급, 인용에 대한 인용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식이 깊어진다기 보다 세계의 동질성을 발견하는 경험 혹은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로 허무하게 맺을수도 있지만 인류라는 종으로 살아가는한 우리는 결코 따로 떨어진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울타리에서 같은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의식의 단말이라는 생각일 수도 있겠어요. 인간은 섬이지만.. 그 섬은 물밑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식이죠. 이런 생각은 저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보이후드라는 영화의 엔딩이었고 이 엔딩 역시 다른 작가의 유명한 말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희망보다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붙잡고 살다보면 좋아지겠죠. 그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살아갈뿐입니다. 일단은 아직 못다읽은 내이름은 빨강을 틈틈히 더 읽는것이 그 일이죠. (회사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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