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영화 보기, 같이 영화 보기

2010.03.05 09:56

DJUNA 조회 수:2673

[엑소시스트]를 보면서 키들거리는 관객들에게 불만인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입니다. 이곳 페이지 게시판에도 그런 관람 분위기에 불평하는 사람들의 글이 꽤 올라오죠. 비슷한 분위기에 화가 난 관객들이 로저 이버트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적도 있으니, 결코 우리나라에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버트 영감은 요새 관객들이 패러디와 인용에 지나칠 정도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을 겁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신 어떤 분들은 엽기 유행을 예로 들었고요. 생각하기 귀찮다면 [엑소시스트]가 다른 호러 영화들처럼 자극의 약발이 닳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요새 이런 영화를 보고 구토를 하거나 기절하는 사람은 없으니 사실은 사실이죠.

그러나 이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이미 전에도 비슷한 글을 한 번 쓴 적 있으니 여기서 이 주제에 대해 다시 써야 할 이유는 없지요. 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엑소시스트]의 관람 분위기에 열받은 사람들의 글이 이곳저곳에 올라오고 있다는 건, 단순히 요새 관객들이 [엑소시스트]를 보고 키들거린다는 사실만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와는 다른 종류의 관객들도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엑소시스트]를 보고 웃을 생각이 전혀 없으며 여전히 그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관객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진지한 태도의 관객들은 사실 킬킬거리는 관객들보다 많을 겁니다. 웃는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뜨이지만 조용히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배경으로 남죠.

전 어떠냐고요? 전 조용한 관객 쪽입니다. 아직 [엑소시스트]를 보고 키들거릴 생각도 없고 또 그런 분위기에서 볼 생각도 없어요. 그래서 전 평일 오전 첫 회로 그 영화를 보았답니다. 극장 안에는 한 열 명쯤 있었는데, 모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쥐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그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진지한 태도의 관객'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모두 진지한 분위기로 보고 싶어서 저처럼 아침에 왔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웃고 싶었는데,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기죽어서 가만히 있었을 수도 있죠. 어중간한 사람들도 꽤 섞여 있었을 겁니다. 만약 키들거리는 분위기에서 영화를 봤다면 분위기에 말려들어 웃었을 사람들이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웃을 생각도 못했을 수 있어요.

영화 관람의 문제점은 같이 영화를 볼 관객들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린 옆좌석에 앉을 한 두 사람만을 고를 수 있을 뿐, 전체 관객들을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영화제나 아트 하우스 영화팬들만이 찾을 졸린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어느 정도 정선된 관객들이 들어오겠지만 그때도 꼭 그런 건 아니죠. 심지어 저와 비슷한 관객들만 모였어도 그들이 늘 제 맘에 맞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같이 봐서 좋을 영화도 있고, 혼자 봐서 좋을 영화도 있습니다. 요새 여름마다 할리우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같이 보는 게 좋습니다. 적당히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관객들과 적당히 호흡을 맞추다 보면 흥도 커지죠.

혼자 보는 게 더 좋은 영화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 자크 타티의 영화를 '일반 관객'들과 함께 볼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영화는 '코미디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품이 될테니 불만도 크겠죠. 그렇다고 영화 평론가들과 같은 전문가들과 함께 볼 생각도 들지 않아요. 어느 쪽이어도 주변 사람들 반응에 신경 쓰느라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몇몇 호러 영화들도 마찬가지죠. 대충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봤어도 가끔 혼자 보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도 가끔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 같은 영화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다시 보고 싶기도 해요. 아마 혼자서 그 영화를 본다면 폴리의 거창한 행동에 보다 진지하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행히도 비디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군중과 고독을 선택하며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비디오나 DVD는 영화관만큼의 경험은 제공해주지 못하지만 그것만 해도 상당한 발전입니다. 관람 방식의 차이는 종종 심각할 정도로 감상에 영향을 끼치므로, 비디오나 텔레비전, DVD같은 매체들은 같은 제목에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한 영화들을 별도로 만들어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0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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