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수미와 수연은 나란히 침대에 앉아 있습니다. 수연은 엄마의 덧신을 손에 쥐며 흐느끼고 있고 수미는 그런 수연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참다 못한 무현이 들어옵니다. 이쯤해서 슬슬 무현이 수미의 증상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검토해보지 않겠어요? 무현은 수미가 아주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수미가 은주의 인격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수미가 수연의 환상까지 만들어냈다는 건 최근에야 확신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현은 이런 우리의 추측에 맞을만큼 일관성있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은주역을 하는 수미를 침대에 맞아들이고 선규와 미희를 초대하는 것처럼 딸의 비위를 능숙하게 맞추기도 하지만, 아픈 딸을 설득하려고 덧없는 설교를 늘어놓을 때는 굉장히 당황하고 서툰 사람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파프리카 그러는 동안 무현은 또 서툴게 이성에 호소하려 합니다. 하지만 화가 잔뜩 난 수미는 수연을 학대하는 은주를 비난하기 시작하지요. 그게 안 통하자 수미는 수연의 팔을 끌고 외칩니다. "니가 말해봐! 어서 말해봐!" 여기서 또 수연은 그 해석불가능한 이상한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봅니다.

결국 무현은 결정타를 날립니다. "수미야, 수연인 죽었잖아!"

이 대사는 정말 불만스러워요. 공포영화의 뻔한 클리셰가 옷주름 하나 안바꾸고 그대로 등장한 것 같잖아요. 이럴 때는 단순한 게 좋긴 하지만 그래도 이 공식적 대사가 주는 진부한 느낌은 피하는 게 좋았을 거예요.

듀나 화면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장르 관객들에겐 진부한 폭로라도 수미에겐 폭탄선언이죠. 수미는 뻔히 자기 눈 앞에 보이는 동생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부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잡아내는 동생은 점점 멀어져가죠. 언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는 수연의 표정은 점점 공포에 젖어갑니다. 이 장면에서 임수정과 문근영의 연기는 굉장히 좋습니다. 둘 다 단순한 공포나 슬픔을 훨씬 넘어선 확장된 감정을 표출하고 있지요.

이 장면에는 비논리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수연의 감정은 단순히 자기가 유령이라는 걸 알아차린 캐릭터의 공포가 아니니까요. 수연은 자신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잖아요.

파프리카 드디어 아이는 비명을 질러댑니다...

듀나 이 장면 뒤에는 원래 혼자 있는 수미에게 수연이 다시 다가와 수미를 원망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에도 나오는 "언니는 항상 없었잖아"라는 대사도 그 삭제된 장면에 나오죠. 그 장면도 좋은 점이 있긴 한데, 역시 삭제하는 편이 나은 것 같습니다. 수미의 상실감을 조금 깨는 느낌도 있고, 지금까지 비교적 흐릿하게 처리한 초자연적인 면을 너무 분명하게 드러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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