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그들도 배가 부르길

2016.10.01 01:26

푸른나무 조회 수:947

금요일 저녁으로 쌀국수를 사먹었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부쩍 가을 같고 바람도 살짝 느껴져서 스타킹도 챙겨 신었는데 그러고 출근길에 쌀국수 생각이 났거든요. 내일 친구 하나는 태국 여행 가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르죠. 뭔가 부럽다 하면서 쩝쩝.


오늘은 정말 피곤해서 귀가길 지하철에서 눈만 감아도 잘 것 같았어요. 발바닥도 시큼시큼. 문득 지진 때 '괜찮아'라고 물어봐준 지인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어요. 신호가 가자마자 받아주었어요. 그 사람은 누군가 끓여준 미역국을 저녁으로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통화를 끝내고 보니 냉장고엔 버려야 할 음식물이 가득해요. 언제부턴가 집에서 보내주는 음식들이 잘 상해요. 집에선 괜찮은데 저한테만 보내면 김치에 꽃가지가 핍니다. 아이스박스에 넣어 보내도 들락날락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음식물을 버리는게 그리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냉장고 문을 닫습니다. 아 골치 아파요..


지인 곁에 누군가 미역국도 끓여서 먹으라고 챙겨준다니 참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그 사람도 요리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묘하게도, 동네에 내려서 쌀국수를 먹으러 가면서 예전에 알던 사람의 음식 맛이 떠올랐어요. 자주 해주진 않았지만 먹었던 쌀국수, 파스타. 그 때는 제가 요리를 참 많이 했었는데 그게 피곤했었어요. 저도 요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냥 일상노동이죠. 제가 요리랍시고 흉내내 한 음식들이 대강 만들어도 대체로 먹을 만은 하고 간혹 맛있었다 싶기도 했지만, 그 사람의 요리는 몇 번 안되는데 아주 깔끔한 맛이 나고 정확하게 맛있었어요. 맛있었는데, 생각을 했죠. 요리에도 그 사람의 날카로운 재치와 상통하는 면이 있었달까..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음식 맛이 떠오른 거죠. 사람의 기억은 좀 이상한 면이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마다 요리의 맛이 다르거든요.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참 많은 면을 말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는 그 사람의 글씨를 알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주고 받은 편지들, 못생겨서 인상적인 글씨, 쓰는 말투, 어떤 순간의 표정. 그리고 요리의 맛... 기억은 좀 지나친 데가 있죠. 그리운 것은 아닌데 한번 알았던 것은 알았던 것이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거죠..


쌀국수를 먹고 나서는 동네 까페에서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들으며 커피를 한 잔 마셨어요.

솔직히 말하면 피곤할 때 혼자 밥을 먹으면 허기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4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0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468
107 이런 노래나 가수(밴드)를 찾습니다. [2] catgotmy 2012.03.29 808
106 투혼 [1] 감자쥬스 2011.10.09 882
» (바낭) 그들도 배가 부르길 [2] 푸른나무 2016.10.01 947
104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1] calmaria 2011.11.28 996
103 싱숭생숭한 12월의 밤입니다. [2] 오늘도안녕 2011.12.05 1066
102 방송 (특히 예능 계통) 질문 [3] 장모종 2015.11.05 1141
101 allmusic 사용하시는 분? [6] 살리 2012.03.18 1164
100 유로때문에 소외받는... 아르헨 vs 브라질 하이라이트 저라도 올리겠습니다. [3] 자본주의의돼지 2012.06.11 1205
99 잘생긴 U2의 보노 아저씨 [4] 자두맛사탕 2011.09.16 1217
98 (디아블로3는 생활) 전 마음이 여려서, 그래서 상처받기 쉬운 타입인지라 [5] chobo 2012.10.12 1259
97 듀게 SF 모임 10월 참관기 칼리토 2014.10.15 1261
96 인터넷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승/패를 정하는 걸 좋아하는거 같아요. [4] 자본주의의돼지 2012.06.18 1298
95 저세상에서 너를 잡으러 온 걸그룹 [3] 룽게 2019.09.12 1325
94 로봇 수술에 관한 질문입니다. [5] chobo 2013.11.11 1368
93 무더운 여름 밤을 위한 본격 야구 스릴러 극장, 두산 VS 롯데 8회말 현재 6:8 [20] chobo 2011.07.31 1450
92 [끝났습니다] 주말밤에 흥청망청 덩실덩실 윈앰방송. 오늘은 신청곡도 받고 찔끔찔끔 저질 멘트도 합니다. [87] 루이와 오귀스트 2011.05.14 1483
91 (근성으로 쓰는 디아블로3 이야기) PVP 후기! [8] chobo 2013.01.16 1491
90 [자랑질] 저 오늘 술 마셔요.. [6] 연금술사 2011.04.29 1583
89 인두겹위에철가면을쓴 류 종결자.(기사참조) 타보 2011.06.29 1600
88 (디아블로3) 더 이상의 진행은 생략한다 [4] chobo 2012.06.10 161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