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와 한강에 둘러쌓여, 이촌동은 서울의 여느곳과는 다르게 고요하다. 가로수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 또한 유난한데, 잘 포장된 인도를 걷고 있노라면 이곳이 왜 '리틀 도쿄'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헬카페 스피리터스는 마치 그 곳에 오래전부터 자리잡았던 것처럼, 한층 더 고요하고 깊은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후쿠오카에서 마주친 '카페 히이라기'의 모습이 이러했던가. 끊임없이 커피잔을 닦고,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곳의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바리스타는 물을 끓이는것부터 잔을 고르기까지 빈틈없는 움직임을 보여줬고, 커피를 내리기 위해 마른 수건을 화려하게 펼치기도 했다. 커피를 다 마신 후에는 카페의 로고가 적혀있는 영수증에 손수 마신 커피의 가격을 적고 서명을 해주었는데, 그것을 들고 카페에 문을 나서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헬카페의 드립 블렌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최근에는 블렌드에 파나마 게이샤가 들어가 피니시가 더욱 화려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 창밖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따뜻한 물수건이 서빙되었다. 멀리 보이는 스피커는 클립쉬, 진공관 앰프에서 울려퍼지는 은은한 음색 담아 멋진 음악을 공간 가득 퍼트리고 있었다. 커피는 그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예술작품이었다. 바로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온도의 커피는 입안 가득 화려하게 펼쳐진다. 묵직한 보디감은 목넘김 이후에도 입안을 쉽게 비워주지 않는다. 길고 멋진 커피 맛이 입안에 가득 남아있다. 한 곡의 첼로 소나타가 커피로 변한다면 이런 맛이지 않을까 싶다.


커피 한 잔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이제는 더 이상 관심도 가지 않는 커피 원가에 대한 가십거리 기사들이 생각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 가격을 물감의 가격으로 대체할 수 없듯, 커피 한 잔에 담긴 노력 또한 생두 원가로 결정될 순 없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바텐더가 저녁을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놀라웠던건 그가 칼을 도마위에 올리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소음 없이 칼은 사뿐, 도마위에 내려앉았다. 그 이후에도 그가 바에서 준비를 하는 과정에 나는 그 어떤 '소음'도 느낄 수 없었다. 오랜 훈련이 만들어낸 '몸에 베인' 움직임이었다. 한 잔의 음료를 마시는 이들에게 가장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들은 사소한 움직임에도 신경쓴다.


나는 늘 한 잔의 값어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헬카페 스피리터스의 드립블렌드는 1만 1천원. '풀 서비스 카페' 답게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된 그릇에 담겨나온다. 로스터 채플에 한참이나 앉아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지아장커의 영화를 보고 나와서의 기분이 이러할까. 나는 이 한잔을 마시기에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인간일까. 이른 퇴근에 부리나케 들려 마신 한 잔의 커피 앞에 나는 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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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카페 스피리터스

이촌동 한강맨션 31동 208호

매일 0900-0200 / 카페 0900-2000, 바 19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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