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8 07:31
쥐스틴네 집안 사람들은 모두 채식주의자입니다. 엄마, 아빠는 모두 수의사이고 언니 알렉스도 엄마아빠가 다녔던 바로 그 학교를 다니고 있죠. 영화가 시작되면
쥐스틴 역시 그 학교에 신입생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베지터리언이고 베터리너리언인 거죠. 낡을대로 낡은 말장난인데, 이게 이 영화
아이디어의 시작입니다.
자매가 다니는 학교는 저에겐 좀 끔찍한 곳입니다. 선후배 규율이 엄격하고 구역질나는 입회의식이 전통이고. 하여간 쥐스틴은 이 입회의식에서 익히지 않은
토끼의 간을 억지로 삼키게 되는데, 그 뒤부터 생살과 인육에 대한 갈망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 그런데 언니인 알렉스도 이 단계를 거쳤을까요? 요샌 채식주의자처럼
굴지도 않는 것 같은데 말이죠.
쥘리아 뒤쿠르노의 [로우]는 늑대인간 영화입니다. 쥘리아와 알렉스가 진짜로 늑대인간이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비슷한 전통과 주제를 따르죠. 지금까지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주인공이 어느 단계에서 내면의 야수성을 깨닫는다는 거죠. 물론 쥐스틴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메타포로도 기능합니다. 가장 쉬운 건
억압된 여성의 욕망 운운인데, 이 이야기는 너무 깊이 다루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런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요샌 이런 식으로 해석되는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봤어요. 너무 뻔한 이야기만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주제가 무엇이건, [로우]는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식인이 소재니 고어 장면도 꽤 있죠. 하지만 피칠갑 난장판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의 호러적 재미는 노골적인 비주얼이 아니라 그 상황을 다루는 리듬감과 서스펜스에서 나옵니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아, 그러지 마, 아악, 정말 그래 버렸네!" 같은 비명이 나오는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고요. 원래 사람들은 과장된 고어보다 현실감 있는
신체 손상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이 영화도 이걸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해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캐릭터와 관계 묘사입니다. 쥐스틴과 알렉스는 최근 몇 년 동안 본 영화 속 자매들 중 가장 끔찍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사람들이에요. 식인이라는 소재가 당연시 되고 두 사람의 관계가 극단적이 되면 영화는 정말 끝장을 봅니다. 클라이맥스는 작정하고 노골적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그 클라이맥스까지 가는 이야기의 재미지요.
단지 결말은 좀 심심합니다. 일종의 의무적인 반전인데, 거기에 그렇게 힘을 주면서 영화를 끝낼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관객들 대부분이
눈치챘을 내용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놓을 다른 재료들도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영화의 큰 흠이 될 정도는 아니에요.
(17/08/08)
★★★☆
기타등등
특수분장으로 난도질당한 사람보다 진짜로 죽은 동물의 시체가 더 무서우신 분들은 보시기 전에 주의하시고. 하지만 무얼 기대하셨나요. 수의학교 배경 영화예요.
감독: Julia Ducournau, 배우: Garance Marillier, Ella Rumpf, Rabah Nait Oufella, Laurent Lucas, Joana Preiss, 다른 제목: Grave
IMDb http://www.imdb.com/title/tt495452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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