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자 The New York Hat (1912)

2018.03.28 22:08

DJUNA 조회 수:3326


백년 전까지만 해도 서구사회에서는 모자를 쓰지 않고 외출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지요. 당연히 모자는 필수품이었고 그만큼이나 사치품이기도 했습니다. '모자 같은 것에 이상할 정도 돈을 많이 쓰는 여자'에 대한 편견은 꽤 오래 남았어요. 1950년에 나온 A. E. 밴 보트의 SF [스페이스 비글]에도 그 흔적이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로 날아가는 탐사선의 모험을 다룬 이 소설에서 지구인 주인공은 인간 여성과 비슷한 모습의 외계인과 만나는데, 밴 보트가 이 여성적인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넣은 건 모자와 비슷한 머리 모양이었습니다.

[뉴욕 모자]도 바로 이 여자들의 모자에 대한 영화입니다. 15분 정도의 짧은 소품이예요. 단지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어마어마하죠. 감독은 D.W. 그리피스, 각본가는 아니타 루스와 프랜시스 매리언, 주연은 메리 픽포드와 라이오넬 배리모어. 심지어 릴리언 기시도 단역으로 잠시 나와요.

영화의 주인공 몰리는 성격 더러운 구두쇠인 아버지 밑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뜬 몰리의 어머니는 그런 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남편 몰래 모은 돈을 볼튼 목사에게 맡겨놓습니다. 몰리가 마을 가게에 새로 들어온 뉴욕 스타일의 예쁜 모자를 보고 있는 걸 본 볼튼 목사는 그 돈으로 모자를 사서 몰리에게 주지요. 하지만 순식간에 목사와 몰리는 스캔들의 중심에 서고 분노한 몰리의 아버지는 그 모자를 찢어버립니다.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마세요. 15분만에 이 갈등은 해결됩니다. 목사가 사정을 설명하면 끝나는 일이니까요.

고풍스럽고 단순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 중상층 사회의 편협함과 위선을 아주 경제적으로 꼬집습니다. 메리 픽포드가 아름답게 연기하는 가련한 희생자인 몰리를 제외하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문제가 있어요. 아버지가 모든 문제의 원흉이지만 교구 여자들의 위선과 오지랖도 만만치 않죠. 그리고 작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여길 것인지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었던 볼튼 목사는 그냥 어리석었죠.선량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목사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생각이 깊고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더 잘 알아야죠. (18/03/28)

★★★

기타등등
라이오넬 배리모어의 이렇게 파릿파릿하게 젊은 모습을 보니 신기하더군요. 건장하고, 젊고, 잘 걸어다니고.


감독: D.W. Griffith, 배우: Mary Pickford, Charles Hill Mailes, Kate Bruce, Lionel Barrymore, Alfred Paget, Lillian Gish

IMDb http://www.imdb.com/title/tt00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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