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3 18:33
오늘 밤 10시 30분 채널CGV에서 영화 <네루다>를 방송하네요.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방송해 주니 너무 좋아요. ^O^
검색해 보니 2017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를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 영화평론가상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올랐네요.
metacritic 평론가 평점이 82점이고 imdb 관객 평점이 6.9점인 걸 보면 평론가들에게서는 상당히 좋은 평을 받은 반면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도피 중인 시인 네루다와 그를 체포하려는 비밀경찰의 쫒고 쫒기는 관계 속에 싹트는 우정(?), 뭐 그런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타인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드는 그런 영화 무척 좋아합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혹시 안 보신 분 계시면 같이 봐요.
예고편 가져왔어요.
2018.08.13 18:39
2018.08.13 18:43
그런 영화가 아니군요. orz (알려주셔서 감사...)
예고편이 사기인 것인가...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알기 위해서 봐야겠군요. ^^
2018.08.13 19:18
2018.08.13 19:29
생각해 보니 저도 지난 주 영화는 못 봤네요.
쏘맥 님과 같이 본다니 더 열심히 봐야겠어요. ^^
2018.08.13 21:44
2018.08.13 23:26
2018.08.13 23:32
내레이션이 참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 같아요.
내레이션이 의외의 긴장감을 주더군요.
영화 시작해서 이만... ^^
2018.08.14 01:03
아래 내용은 스포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영화를 안 보신 분에게는 감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전혀 보장할 수 없는 횡설수설입니다. ^^)
이 영화는 네루다라는 시인에 관한 영화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사람과 그를 지켜보고 따라가는 사람의 관계에 관한 영화인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초반부터 나오는 내레이터의 정체는 언뜻 보면 비밀경찰 오스카인 것 같지만
이 내레이터는 오스카가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더군요.
마치 모든 걸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전지적 관찰자처럼 ... 그래서 뭔가 심리분석영화(?) 같은 느낌도...
영화의 중반부터 누군가의 뒤를 쫓는 것은 그를 따라가는 것이고, 그를 따라가는 것은 결국 그를 따르는 것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적자는 도망자가 가는 곳으로 따라갈 뿐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는 도망자죠.
추적자는 그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이고 그가 따라가는 대상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놓친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지고요. 이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추적자와 도망자의 심리가 거꾸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보통 도망자가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이 영화에서는 추적자가 뭔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하더군요.
오히려 도망자인 네루다는 일부러 경찰이 따라오기를 바라는 듯 미끼를 던져주는 듯한 위험한 행동을 많이 해요.
추적자의 입장에서 도망자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죽자사자 따라갈 만큼 가치 있는 인물이어야 하죠.
그래야 도망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추적자인 자신이 가치 있는 인물이 되니까요.
마지막 오스카의 모습은 뭐랄까 마치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모습 같은 종교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켰어요.
그가 추적한 사람이 네루다여서 그래서 마침내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을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 같았어요.
칠레에서는 네루다가 이 정도의 사람이었던 걸까... 이 영화는 네루다 자체보다는 네루다가 칠레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마지막에 잠깐 네루다의 심리적 압박감이랄까, 피로감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부담감의 표현이었는지... 그를 따라오는 사람의 존재는 그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쳤을 테니...
생각보다 특이하고 신선한 영화였어요. 예전에 누아르 영화 찾아볼 때 내레이션이 아주 멋져서 기억에 남았던
Blast of Silence(1961)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 영화에서는 내레이션이 주인공과 별개로 독립적인 캐릭터처럼 느껴졌었죠.
<네루다>에서도 내레이터의 캐릭터가 좀 독특해요. 오스카+미지의 인물인 것 같은... 등장인물이 아닌 독립적인 캐릭터...
내레이션과 음악이 아주 멋지게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 기억에 남아요.
네루다 부인과 오스카의 대화를 보면서 영화 <Stranger Than Fiction>도 생각났는데...
갑자기 이 영화가 실제 네루다의 삶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네루다가 썼다는 소설의 영화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이고 머리가 복잡해져서 이만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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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은유인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작가는 독자에게 계속 미끼를 던져줘야 하죠. 독자가 길을 잃지 않고 잘 따라오게...
하지만 독자에게 잡히면 안 되죠.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 다 들키면 안 되는 거죠.
작가는 독자보다 몇 걸음 앞서 가면서 독자가 계속 쫒아오게 만들어야 하고 그런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작가가 잘 도망친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니고 작가가 보여주려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어야
그것을 쫓아오는 독자도 그것을 읽은 후 좀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겠죠.
어쩌면 이 영화는 작가로서의 네루다의 고민을 그의 전기 영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네루다가 자기를 쫓아오는 비밀경찰에게 그렇게 잘 따라오라고 미끼를 던져주고 그랬을 것
같지는 않으니...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데 그러면 마지막에 오스카는 왜 그렇게 되었어야 하는가...
2018.08.14 16:05
보다가 몇 장면을 놓쳤는데 그러니까 주인공 경찰이 네루다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얘기인가요?
2018.08.14 16:48
가상의 인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현실의 인물인지 소설 속 인물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레이션은 오스카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오스카의 목소리를 빌린 전지적 관찰자의 말이기도 한 것 같은데
오스카가 볼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네루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다 아는 전지적 관찰자라면 네루다 자신밖에 없을 테고
그렇다면 결국 오스카는 네루다에 의해 만들어진 (작가의 말을 전달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오스카는 실제로 네루다를 추적하고 있었을 비밀경찰일 수도 있고, 작가로서의 네루다가 스스로를 지켜보는 눈,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는 자신의 일부(?)를 캐릭터로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작가인 네루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그를 쫓는 존재들, 칠레의 국민이나 그의 독자를 암시하는 존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드는 그런 영화 ->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