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일하는거

2010.12.10 20:37

메피스토 조회 수:2157

* 노가다에요. 노가다. 좀 소프트해진 노가다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혹시 듀나 대학생분들 중 졸업후 유통업에서 일할 생각은 딱히 없으시지만 방학 중 돈 벌 곳을 이곳으로 정하신 분 계신가요? 다른일 알아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요? 고생 살 돈으로 와우계정을 지르세요. 건프라도 좋지요. 다른 일 다해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 하시진 마세요. 돈도 많이 못벌고, 몸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물론 좋은자리, 소위 말하는 '땡보'도 있긴해요. 최근까지 그쪽 업계에서 일했던 친구가 있긴한데, 얘길 들어보니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그거야 거기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격세지감이죠. 밖에서 볼 때 힘든일인건 변하지 않았어요.

 

 

* 늙은 마법사의 목소리로 : 이 얘긴 몇백년은 된 얘기지요...........

 

학비(정확히는 방값)벌려고 거기서 두어달 일했지요...어디보자....그때는 참 추운 겨울이었어요...아르바이트 장소 알아보다가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죠. 아침 7시 좀 넘어서 출근했어요. 아래 창고에 들어오는 물건을 따서 짝키나 L카로 옮겨다가 진열하고, 팔다가, 마감시간 되면 정리하고, 다음날 이벤트 있으면 매대 옮기거나 '작업'해서 진열해두고. 그렇게 일을했어요. 교대근무니까 5시전에 끝난적도 있지만, 그땐 시급 2800이거나 3000원이 안되던 시절이에요. 대부분 연장근무를 했죠. 그나마도 0.5배 이런거 없었어요. 퇴근을 하면 8시, 9시쯤 됐지요. 바쁜 주말은 얄짤없이 10~11시에 끝난적도 있어요. 물론 밤11시에요. 왜 그렇게 일했냐고요?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하루에 열시간 가까운 시간을 서서 일해야했어요. 쉬는시간? 혹시 마트에서 직원들 쉬는 시간이라며 종소리 울리는거 들어보셨나요? 대부분 직원들이 알아서 조율하거나 '요령껏'쉬어요. 정해진 시간은 없었어요. 심지어 밥도 마찬가지. 교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게끔 암묵적으로 합의된 경우인 전자면 다행이지만 후자면 골치아프죠. 바쁘면 쉬는시간이고 뭐고 없어요. 판매직이었거든요. 마트가보면 항상 사람이 있잖아요. 괜히 그런게 아니에요. 출근할땐 하얀양말을 신었죠. 근데 퇴근할때쯤이면 발바닥이 노랗게 변해있더라고요. 처음엔 집에 오면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죠. 익숙해지니까 괜찮긴 했지만.

 

그렇게 일을하고 한달에 얼마를 받았는지 아세요? 한 80만원인가 받았나 그럴꺼에요. 당시 물가를 감안해도 딱히 높은 임금은 아니었어요. 두달 일해서 방값벌은건 방값이 저렴했기 때문이고, 등록금만해도 (당시)사립대 기준 서너달은 일했어야 한다는 소리니까요. 꼬박 한학기죠. 그나마도 방값이에요. 등록금은 부모님 손을 벌려야했죠.   

 

고작 그거 일했는데도 배운건 있어요. 마트라고 좋은건 아니라는거죠. 오래된 물건 위로 쌓고 신선한 물건 아래로 숨겨두는 물건 깔아주는 방법, 고객 속이는 방법(예를들어 최근 언급된 묶음 판매 할인트릭 말입니다), 일부 품목의 경우 뒷창고에 그득했던 재고와 그 처리방법....그런건 다 마트에서 보거나 배웠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장보다가 제가 가능한 범위내에서 틈틈히 확인해보면 여전하더군요-_-.

 

 

* 친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친절함이 뭘까요? 전 모르겠어요. 이게 참 이기적인 감성같기도 하고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요. 서비스직=친절로 연결되긴 하는데, 이게 바람직한건지 의문이 가더라고요.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마트에서의 친절함은 친절함이라기 보단 입력된 정보에 근거한 행동양식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이라기보단 교육받은대로, 메뉴얼대로 할 뿐이니까요. 현실이 무슨 미스터 초밥왕도 아니고 마트에서 일하는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서 항상 우리 제품을 구매해주시는 고객님에 대한 감사 마인드를 바라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비정규직 직원이기에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투영할 여지가 비교적 적어요. 짤리는 것에만 주의하면 되죠. 어쩌면 그런것과 체계적인 교육이 역설적이게도 마트=친절함이라는 공식이 생기는 하나의 원인일지도 모르죠. 일반 상인들은 자기 장사잖아요. 이윤에 민감하고, 그 민감함이 장사를 하는 '태도'에 바로 반영되죠. 그것이 때론 긍정적인 방향일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방향일수도 있는게 문제긴 해요. 도를 넘는 판매자들의 무례를 이해해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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