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주말의 명화

2018.12.30 14:28

흙파먹어요 조회 수:2068

빰! 빠바바밤! 빠바바밤! 빠라바암! 감격의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사발면을 기다리는 3분 보다 더 길고 지루한 광고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우리는 한 주의 목적이자 대단원인 주말의 명화를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지요. 해철 옹의 노래가사따나,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이등병처럼 각잡고 시간 맞추어 보아야 했던 주말의 명화만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천녀유혼, 다이하드3, 사랑의 행로와 같은 작품들을 장면 장면 하나 하나 기억하고 있지 못 할 거에요. 세상에, 열 네살 짜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벤허를 끝까지 본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물론 주말의 명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선행 되어야 하는 과제 해결이 있었지요. 바로 뭘 볼 때 끊임 없이 수다를 떠는 엄마 아빠를 어떻게든 재우는 것이었어요. 두어 시간 사이에 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을 일 있다고 9시에 이미 본 뉴스를 또 보겠다는 아빠와, 일찍 자야 키 큰다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어떻게든 안방에 밀어넣는 게 제1 과업이었던 게지요... 아, 쓰다보니 아직 젊었던 그들에게도 아들을 일찍 재워야겠는 사정이 있었겠단 생각이 들지만, 이보시오들 주말의 명화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오.. 그거 내일 하라구♥

제목에는 넷플릭스라고 썼지만, 저는 북미 취향이 아니라 왓챠플레이를 쓰거든요. 그건 문제가 아니고, 기술이 발달하고 조금씩 더 편해질수록 감격과 기대는 그 옛 시절 주말의 명화 때의 것에 비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단 말입니다.

가령, 이번 주에 왓챠에는 그간 보고 싶었던 콘택트가 마침내 업로드 되었는데, 그렇게 알현하고 싶었던 조디 포스터의 용안이건만 이걸 지금 네 번에 걸쳐 보고 있어요. 언제든, 어디서든 이어볼 수 있다는 몹쓸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만 것이지요. 주말의 명화 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 꿇어 앉아 보는 거지요.

<여기서 잠깐. 극장은 열외로 쳐야 합니다. 허지웅 선생의 말마따나 극장은 신전이라고요.>

여튼, 와레즈로 불법 다운 받은 파일을 아껴보고 나눠보고 바꿔보고 다시보던 시절(야동 얘기가 아닙니다... 맞나?) 만 해도 이 지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육체미가 돋보이는 CRT 모니터 앞에 공손히 앉아 옆에는 티슈... 아니, 피자나 홈런볼처럼 한 손으로 먹을 수 있고 씹을 때 소리 안 나는 주전부리를 끼고는 입을 반쯤 벌린채 감상을 했더랬지요.

가네시로 가츠키의 소설 영화에서처럼을 보면 불행한 일을 당한 후 집에 틀어박힌 여자가 나와요. 그나마 그녀를 앉아라도 있게 하는 이유는 배달시킨 미드 DVD 였지요. 아마 소설이 쓰여졌을 때 넷플릭스가 서비스 되고 있었다면 그녀는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서 폰만 보고 있었을지 몰라요. 프랜즈 클릭하는 순간 계절 순삭. 보다 말다 보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시간은 제대로 얹은 피자치즈처럼 질질 늘어난 끝에 인생에 곰팡이 팍! 눈 떠보니 저승!!

그리고,

너무 보고 싶은 거지요. 성우들이 더빙한 외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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