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탈기어 솔리드라는 게임이 있었더랬죠.

세기말, 세기초 즈음에 튀어 나온 게임이었는데 스토리가 복잡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근데 또 게임 만드는 사람들이 애초에 앞뒤 맞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 없이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세 편쯤 나온 후엔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다가 '이번이 완결편!!!'이라고 외치며 짜자잔~ 하고 등장한 4편. 

게임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선 논란도 조금 있었지만 팬들도 포기했던 '지난 이야기 죄다 끼어 맞추기'에 성공해낸 것으로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정말 대단하긴 했어요. 진짜 앞뒤가 맞을 수가 없는 이야기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봉합해냈거든요. 저도 플레이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그래서 그게 이야기 자체로서 훌륭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 별로' 였습니다.

어떻게든 짜맞춰지긴 했지만 개연성을 따지고 들면 막장 오브 더 막장급인 데다가... 그냥 별로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냥 덕후들 떡밥 놀이용으로라면 모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주 뻔한 가운데 사설을 쓸 데 없이 길게 적어 놓아서 결론은 간단하게 이야기하죠.

마블 히어로 무비들, 특히 어벤져스 영화들을 볼 때마다 이 게임 생각이 납니다.

애초에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미션을 어떻게든 성립 시켜내는 작가들의 능력과 노고에는 정말 매번 감탄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해서 완성된 이야기 자체는 그렇게 훌륭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지를 않습니다. 그게 늘 아쉬워요.



2.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꼽아보자면 일단 개그의 비중이 컸다는 겁니다. 지금껏 본 마블 영화들 중에 가장 개그의 비중이 큰 영화였네요.

이게 되게 스케일이 큰 이야기인 척 하지만 사실은 마지막 전투 한 번을 제외하곤 거의 소소한 환타지 모험극 분위기로 흘러가는데 워낙 유머가 많아서 딱히 지루하지 않았어요. 또 이 개그들이 분량도 많지만 의외로(?) 타율도 높아서 괜찮았습니다. 특히 캡틴 아메리카의 원작 패러디 드립 하나는 정말. ㅋㅋㅋㅋ


그리고 지난 10년간 활약했던 메인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갖고 정말 작정하고 팬서비스를 퍼붇는데 이 캐릭터들에게 애정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팬서비스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메인 히어로'라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이미 3부작을 완성시킨 토르,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인데 전 이 중에서 토르 영화들은 아예 안 봤고 캡틴 아메리카는 보긴 다 봤는데 캐릭터에 호감이 없어서 제대로 즐긴 건 아이언맨 파트만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흠;


또... 마지막 전투는 뭐 워낙 스케일 큰 개싸움(...)이라 딱히 재밌진 않았지만 일단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는 부분에서의 뻔한 연출이 '지난 10년' 버프를 받아 나름 감흥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각 히어로들의 개성과 관계를 살린 장면들이 캐릭터별로 한 명씩은 거의 다 들어가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스토리 비중상 그동안 쭉 원작 대비 잔혹할 수준으로 너프 당해 있었던 모 캐릭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능력을 뽐내는 장면을 넣어줬다는 게 가장 좋았습니다. 결론적으로 1대 1 전투에서 혼자서 타노스를 발라 버린 유일한 캐릭터가 되었네요. ㅋㅋ



3.

맘에 안 들었던 부분이라면...


뭐 워낙 할 얘기가 많은 편이었던 데다가 그동안도 쭉 그래오긴 했지만 '인류 반쪽!' 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달라진 세계에 대한 묘사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좀 허전했구요.


캐릭터별 파워 밸런스야 예전부터 포기하고 들어가는 부분이긴 했지만 마지막 편에서 유독 그게 더 심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인피니티 워에서 사기템 손에 넣고 혼자 한 방에 타노스를 날려 버리던 분이 분명 계셨는데 마지막 전투에선 대체 왜 때문에...;


각종 드립과 훈훈 장면들을 바르고 빠르게 전개하면서 나름 열심히 덮고 감춰내긴 했지만 그래도 개연성... 음...;;


솔직히 너무 깁니다. 이렇게 길어진 건 중반의 팬서비스 장면들 때문일 텐데... 뭐 그건 사실 제가 마블 냉담자이면서 아이언맨에 대한 의리(?)로 굳이 극장을 찾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커요. 


타노스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들이 지루했어요. 도대체 왜 이 양반을 훌륭한 악역이라고 떠받드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뭣보다도 가장 심했던 건 '그 캐릭터'의 이야기였겠죠.

애초에 어벤져스의 역전 전략을 살펴보면 불가피한 일이었긴 합니다만. 그게 왜 하필... 

스포일러 없이 쓰기로 한 글이라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orz



4.

그 외 잡다한 이야기들.


이제 당연히 나올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캐릭터들, 배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특별 출연 수준으로 짧게 지나가지만 그래도 반갑긴 하더군요. 정말 마지막 회구나! 라는 기분도 들구요.


다 보고 나면 주인공이 네뷸라였나? 뭐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요. 네뷸라 비중 정말 쌩뚱맞게 큽니다. ㅋㅋㅋ


모 캐릭터는 정말 말 그대로 '시'부터 '종'까지 개그로 일관하는데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 웃겼어요. ㅋㅋ


캡틴 마블은 비중은 작지만 파워는 너프 거의 없는 느낌으로 정말 세게 나옵니다. 간지나고 예쁘기도 하구요. 비중이야 뭐 어쩔 수 없었죠. 페이즈1 히어로들에 대한 작별 인사 시간이었으니까요.


막판에 '그동안 여성 캐릭터들 안 챙겨서 죄송했습니다' 라는 마블의 반성문 같은 장면이 한 번 나오는데...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고 연출도 촌스러워서 피식 웃었네요. 커뮤니티들 보면 '마블에 PC 묻어서 엔드 게임만 챙겨 보고 접을 거다' 라는 분들 참 많은데 아마 그 분들이 마블 영화를 끊게될 좋은 핑계가 될 것 같기도 했구요.


그러고보면 엘리자베스 올슨은 대놓고 '왜 나만 가슴 노출 의상인데? 이거 너무 웃기고 불공평하지 않냐?' 라고 인터뷰까지 했는데. 여전히 의상은 그대로인 데다가 이번작에선 액션 씬에서 유독 더 강조되었던 것 같은 기분이. =ㅅ=;;


관객들 반응은 듣던 것과는 다르게(?) 대체로 차분했습니다만. 제 뒤의 뒷줄에 완전 내추럴 본 방청객 스피릿의 관객들 몇 분이 세 시간 내내 진짜 열심히 리액션을 하고 있어서 웃겼습니다. 덕택에 좀 더 재밌게 본 것 같기도.


아마 이게 제가 극장에서 보는 마지막 마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위에도 적었듯이 전 정말 아이언맨에 대한 의리 하나로 극장에 간 거여서요. 캡틴 마블도 매력적이고 새로운 스파이더맨 캐릭터도 꽤 괜찮게 뽑혔다고 생각하지만 토니 스타크만큼의 매력은 없네요 제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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