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그렇듯 스포일러는 없구요.



 - 간단히 말해서 남자 하나 때문에 여자 넷의 인생이 꼬이는 얘깁니다. 엄밀히 말해 남자 한 놈이 더 있긴 한데 그 분은 비중이 희박하니 패스하구요.

 한 줄로 요약하면 '염정아랑 결혼해서 고딩 딸 하나 키우던 김윤석이 오리집 사장이랑 바람 피워서 임신까지 시켰는데 그 사장 딸이 김윤석 딸이랑 같은 학교 동급생이래요' 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김윤석이 회사 회식 자리를 오리집으로 잡아서 자기 애인 수입 챙겨주는 현장을 김윤석 딸이 숨어서 훔쳐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이 장면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래도 배우로 유명했지 감독으로는 초짜인 김윤석의 저예산 영화인지라 좀 현실적으로 칙칙한 톤의 비주얼을 보여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따뜻한 색감에 빛과 그림자를 부드럽고 풍성한 느낌으로 잡아내서 '예쁜' 느낌이 들었거든요.

 생각해보면 그게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내용이 그래요.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이고 끝까지 크게 행복한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주인공들(여자 넷이요)은 안 그런 척하면서 사실은 다 대견하고 괜찮은 사람들이고, 현실적인 척하면서도 은근 비현실적으로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가 (소재로 삼은 그 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참 곱고 예뻐요. 이게 제가 느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네요.



 - 그리고 사실은 그 여자 넷들도 별로 안 현실적이게 예쁜 외모를 갖고 있... (쿨럭;)



 - 애초에 연극용으로 쓰여진 각본을 고쳐서 영화화한거라는데, 그래서 보면 여러모로 연극 느낌이 많이 납니다. '등장 인물 수가 적고 배경이 몇 군데로 한정된다' 는 건 물론이고 뭐랄까... 뭐라 콕 찝어서 설명을 못 하겠는데 중간중간 벌어지는 사건들이나 캐릭터들의 성격, 대사들 같은 게 영화보단 연극 쪽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그런데 그래서 더욱 김윤석의 첫 연출이 기대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애초에 원작이 희곡이었다면 화면 연출도 연극적 느낌으로 하면 손쉬웠을 텐데 그런 느낌이 드는 장면이 의외로 적어요. 뭐 되게 개성이 확고하다든가, 아주 신선한 느낌이 든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되게 안정적인 '영화 연출'을 잘 해냈다는는 느낌이었습니다.



 - 대충 정리하자면 제 소감은 이렇습니다.

 의외로 말랑말랑한 정서의 코미디물입니다. 막판에 좀 센 사건이 나오기도 하고 해피해피한 결말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랑 뽀샤쉬한 정서의 힘이 강한 영화에요. 막 다크하고 시리어스하면서 리얼한 이야기는 기대하지 마시길.

 공중파 주말 단막극스런 소박한 스케일의 이야기이고 전체적인 느낌도 그렇습니다. 참 욕심 없는 작품이고 보고 나서 대단한 감흥 같은 것도 없지만 기본적인 만듦새가 튼튼하고 배우들의 연기 질이 아주 높으며 유머들도 상당히 잘 먹히고 인물들의 심리도 자연스럽게 납득이 가도록 흘러서 다 보고 나면 흡족한 기분이 드는 수작입니다. 우주 명작 같은 거 기대하고 보지만 않으시면 대부분 만족하실 거에요.




 - 초짜 남자 감독이 주연을 겸업하면서 여성 캐릭터 넷을 전방에 내세우는 작품을 찍은 것인데... 좀 신선한 느낌이었네요. 김윤석의 배우로서의 역량이야 의심할 바가 없었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생각보다 출중하고, 뭣보다 태도가 맘에 들어요. 아무리 원작이 있다지만 그래도 본인이 맡아서 만들다보면 본인 캐릭터나 사고 방식 위주로 뜯어 고쳤을만도 한데 그랬을만한 부분이 안 보여서요. 김윤석의 아빠 캐릭터는 만악의 근원이긴 해도 분량을 많이 차지할 필요는 없는 인물이고 그래서 딱 그 정도 선에서 그쳐줍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아빠가 막판에 갑자기 툭 튀어 나와서 본인의 심정을 마구 토로하며 공감을 강요하고 본인의 민폐를 합리화하는 게 평균적인 한국 영화의 전개일 텐데 그런 거 전혀 없이 깔끔하게 본인 역할만 하거든요. 심지어 박찬욱 같은 사람도 '아가씨'의 마지막에 쓸 데 없고 재미도 없는 남자들 이야기를 길게 넣어두고 그랬는데 말이죠. 흠.



 - 확인은 안 해봤지만 아마도 원작자는 여성일 듯 하죠. 여자 넷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등장하는 대사 있는 남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빌런입니다. ㅋㅋ 빌런이 아닌 대사 있는 남자 캐릭터는 딱 둘 정도 떠오르는데 그 중 한 분은 5초도 안 나오구요.



 - 김윤석과 불륜 관계를 맺은 분의 딸 역할을 맡은 박세진이란 배우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냥 솔직히 말해서 예뻐서요. (쿨럭;) 경력을 검색해봤더니 이 영화가 사실상 데뷔작인데, 부산국제외고란 데를 다니다가 엄마의 푸쉬로 수퍼모델 대회 나가서 우승하고, 이후로 모델 활동하다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고, 그러다가 오디션을 뚫고 이 영화에 출연하고... 라는 나름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더라구요. 뭐가 됐든 앞으로 자주 보고 싶어지는 분이었습니다. 연기도 잘 했고 캐릭터랑 되게 잘 어울렸어요.



 - 막판엔 사실 '아 이건 좀 너무 간듯요?'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영화의 유머 스타일이 굉장히 제 취향이라서 그냥 재밌게 봤던 것 같아요. 김윤석이 병원에 찾아가는 장면 같은 건 정말 육성으로 깔깔깔거리면서 봤네요. 에스컬레이터씬 참 유치한데 왜 그리 웃기던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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