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생명

2020.01.30 21:05

Sonny 조회 수:544

자기 부모를 칼로 찔러죽이고, 격투대회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그의 연인을 강간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아들 앞에서 나체가 되라며 여자를 윽박지르고 젊은 여자들을 풍속업소에 팔아치우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자는 군계라는 작품이고 후자는 사채꾼 우시지마라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 다 감상자의 도덕을 굉장히 건드리는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전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들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들에게 끌립니다. 우시지마는 차라리 관찰자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군계의 주인공인 나루시마 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작품 내 세계에서 가장 비열하고 구제불능인 남자입니다. 아주 작은 성장을 하긴 하나 그가 쌓은 업은 이야기 출발부터 너무 거대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저는 사악한 인간들의 어설픈 폼재기가 싫습니다. Badass 유형의 캐릭터들은 되다만 위선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 인간쓰레기들에게는 강렬한 매력을 느낍니다. 하는 짓이나 말들이 너무 최악인데도요.

아마 그것은 이 두 인물의 테마가 "생존"이기 때문일 겁니다. 선악을 가리는 게 무의미한 밑바닥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합니다. 자신의 욕망에는 절대 타협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관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약하면 어쩔 수 없다, 무조건 강해져서 살아남아라. 서슴치않고 폭행과 속임수를 써먹는 이들의 악행에서 오히려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미칠 듯이 충실한 걸 보면서 자신에게 솔직한 인간의 시원시원함마저 느낍니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그 약육강식의 법칙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자기연민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질질 짜거나 타인에게 위로를 구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 부분이 제가 이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일겁니다. 자기 앞에 놓인 세계가 얼마나 시궁창이든, 이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믿고 살아갑니다. 물론 최소한의 연대는 있지만 그조차도 이들이 노력해서 만든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의 생명력, 혹은 결행력에 반한 이들이 쌓아올린 일종의 팬과 스타의 관계죠. 나루시마 료와 우시지마 카오루는 타인의 시선이나 애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기에 그 점이 부럽습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만족을 우선하며 살아갑니다. 희생정신, 이타심은 과연 순수한 자기만족이 될 수 있을까요? 인간은 그 정도로 고결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어린애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야할텐데 왜 이 지경일까 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건 그냥 제가 못나서 그러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이 됩니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기일관성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일관성을 만드는 건 결국 생명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누구보다 뻔뻔하고 남의 눈치만 안본다면, 세상과의 싸움에는 힘들어해도 자신에게는 어떤 혐오나 연민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죠. 혹시 악이라는 단어에는 자유와 고집에 대한 질투가 섞여있지는 않은지요. 결국 악이라 함은 생명력의 다른 이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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