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오는 잡설들

2020.02.24 20:56

Sonny 조회 수:922

어제 지인과 코로나 이야기를 하다가 좀비 영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봉준호가 전염병 영화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라고 농을 던지길래 이미 <부산행>이 천만을 찍은 나라에서 전염병 이야기를 뭐 더 할 게 있겠어 지금이 <부산행> 실사판인데... 라고 받아쳤더니 웃더군요. 그러고보니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뭔가 예언처럼 보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이전에 <사이비>란 영화를 찍었습니다....네... 이제 국민들이 염력만 가지면 되는 것인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그냥 펄프픽션의 한 페이지 같습니다. 이단이라는 단어보다는 사이비란 단어를 쓰는 게 더 정확하겠죠? 사기꾼일게 뻔한 자칭 재림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포교활동을 하면서 역병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거의 전염병 예방이 완료되었던 한국에 다시 한번 전염병이 엄청나게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도시 하나는 거의 초토화가 되었구요. 이제 학원과 게임방을 이용자제해달라는 정부 공식 발표부터 모든 초중고가 개학을 연기하고 각종 공공시설들도 일시적 폐쇄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누가 이걸 픽션의 줄거리랍시고 이야기했다면 너무 의도가 뻔하다면서 웃었을 거에요. 그런데 리얼리티의 막장성은 항상 판타지를 능가합니다. 


딱히 코로나 때문은 아니고 그냥 좀 생각이 나서 제가 좋아하는 만화 <아이 엠 어 히어로>를 다시 봤습니다. 영화로도 나왔던 그 작품이 맞아요. 그런데 보면서 필요 이상으로 몰입이 되더군요. 이 작품의 대단한 점은 좀비를 바로 전면에 내세우는 게 아니라 좀비라는 병이 어떻게 퍼지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사태랑 너무 비슷합니다. 누구 하나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여기저기서 유언비어는 퍼지고, 사람들은 그 유언비어에 희망을 걸고 아둔하게 모여들고, 사회는 갈 수록 수습불가능이 되어가고... 대다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묘사를 보면서 좀 울적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현실이 픽션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나... 작품과 현실이 부딪히는 점이 있다면 사람들 사이의 패닉이랄까요. 좀비 사태는 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급속도로 퍼져서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거나 대책없는 낙관에 젖어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이 겁을 먹고 다들 움츠러들었죠. 네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이 만화의 암울한 역설은 사회성이 떨어져서 방에 처박혀 있는 인간들, 이른바 히키코모리들이 그나마 생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는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가 작품 내 좀비들을 "반복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존재들"로 묘사해놓는 건 꽤나 섬뜩합니다. 옛날 영화 <바탈리안>처럼 으어어... 뇌 내놔... 하고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좀비가 되면 살아 생전에 행동하던 패턴대로 계속 행동하거든요. 샐러리맨은 아침 여덟시면 출근을 하고, 주부는 쓰레기를 버리러 일정한 시간에 나가고, 할아버지는 장기를 두고, 경찰은 순찰을 돌고. 이 모든 게 눈알 빠지고 입 벌어지고 온 몸에 혈관이 돋아서 다리 질질 끌고 다니는 좀비들이 그러고 다니니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을 자연히 이입하게 되더라구요. 마스크 쓰고 생기없는 눈으로 지하철에 앉아있는 이 사람들이 좀비랑 다른 게 뭔가. 물론 저도 그 "이 사람들"에 포함되는거구요... 


저는 원래 이런 병이 전파되는 상황에 좀 무딘 편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초기 때도 마스크를 잘 안쓰고 다녔어요. 그런데 이게 갈 수록 심각해져서 이제는 에탄올 스왑도 사고 에탄올도 큰 병으로 몇개 사놨습니다. 마스크도 계속 쓰고 다니구요. 이제 총기만 있으면 정말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팍팍 낼 수 있겠다 싶네요. 방구석은 게으른 제가 먹고 안치운 일회용품 용기로 쌓여있고... 저는 제 방이 폐허로 변해가는 걸 막기 위해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처먹었구나, 이게 아직도 여기 있구나 하면서 제 식습관의 역사를 조사해나가는데 그 발견들이 썩 즐겁진 않네요.


방금 속보가 떴는데 신천지 약 9천명 회원들의 이동경로나 접촉여부를 거의 다 파악했다고 하네요. 누가 됐든 영웅 데뷔는 조금 더 미뤄지려나 봅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 너무 대단하고 감사하네요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72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24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811
124188 서울은 강남 때문에 구원 받은거야 [5] amenic 2010.06.03 6719
124187 "나는"으로 시작된 집단 다구리(폭격) [38] Isolde 2013.01.31 6718
124186 [19금] 너무 야한 패션 [10] 화려한해리포터™ 2012.07.16 6718
124185 살쪄도 살빼도 넌 그냥 유우 [21] pingpong 2010.10.08 6718
124184 저만의 홍대 맛집 [48] 유니스 2012.10.23 6717
124183 여기는 광화문,박이 철수를 안하고 있습니다 [24] ML 2012.12.08 6715
124182 Martin Landau 1928-2017 R.I.P. [4] 조성용 2017.07.17 6713
124181 나얼은 참 독실한... [23] mii 2012.09.24 6713
124180 [기사] 평택 A고교 여학생 생리검사 '물의' [75] zaru 2010.09.13 6712
124179 대표팀 브라질 현지서, '음주가무' 뒤풀이 논란 [86] 자본주의의돼지 2014.07.10 6711
124178 유용한 앱을 말해 봅시다 [38] 그르니에 2014.06.11 6711
124177 도서관에서 비염 있는 남학생의 코 들이키는 소리 [13] 익명이라지요 2013.04.17 6711
124176 원룸창문- 환기와 사생활보호 함께 잡기 [5] 톰티트토트 2010.07.25 6711
124175 정글의 법칙 논란들을 보며 [26] 메피스토 2013.02.11 6710
124174 다시 찾고싶다 님. [19] 랄랄라 2013.02.24 6709
124173 DDP, 홍대제비다방, 서울시청, 북촌 차마시는 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8] soboo 2014.04.06 6708
124172 정유미 VS 정유미 [16] 샤워실의 바보 2013.05.30 6708
124171 티아라 은정, <다섯 손가락>하차가 자진하차가 아니라 질질질 끌려 나온 거였군요. [10] 교집합 2012.08.22 6708
124170 노홍철 '강남스타일'로 세계인 눈에 꽂혔지만… [11] ColeenRoo 2012.08.29 6708
124169 소녀시대 숙소 좀 열악하지 않나요? [31] soboo 2012.03.09 670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