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로그인을 잘 안(못)하는 편인데 로그인을 하게 된 김에

별 얘기도 아닌 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방금 주방 옆 베란다에 가서 뭔가 잡일을 하려는데

선반에 걸어둔 채소 바구니(요즘 많이들 쓰고 메는 네트백에 신문지를 넣고 그 속에 감자나 양파 따위를 넣어 둡니다)에

비주룩한 녹색 발톱 같은 게 보였어요.

녹색 채소 넣어두는 곳이 아니라 놀라서 다시 보니 양파에서 싹이 자랐더군요.

원래 채소를 소량으로, 1-2개 정도만 넣어 보관하는 편인데

양파를 한동안 요리에 많이 쓰지 않았더니 보관기간이 길어지며 싹이 자란 거였어요.


왜 싹이라는 건, 식물의 싹이라는 건 희망의 대명사마냥 쓰이는데

먹는 채소에서 난 싹은 이처럼 생경하게 느껴질까요?

나와서는 안 되는 것, 반기지 않는 종류에 속하듯요.

봄을 맞아 날이 따뜻해지니 양파 싹도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습니다.

개나리도 버들강아지도 싹이 나고 봉오리가 맺힌 모습을 보면 순간 왠지 기쁜데

감자나 양파에서 난 싹은 '거슬려요'(더군다나 감자 싹은 독 때문에 없애야 하는 종류의 것에 속하죠).

사실 오늘 본 양파 싹은 조금 징그럽게까지 느껴졌어요. 양파 싹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도요.


어릴 때부터 다소 늦된 데가 있었던 아이에게

메타인지라고 해야 할 만한 부분일지, 아무튼 일률적인 기준을  들이대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별해야 한다는 점을 

생활 속에서 틈틈이 가르치려 합니다(보통 좀 빠른 아이들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익히는 듯한데

제 아이는 이런 부분에서는 응용이 조금 더딥니다. 이런 부분은 일반적인 학습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제인 것 같은데, 

사람 뇌의 성장 발달이란 국어 수학에만 있는 게 아니라 뇌 안에서 수많은 요소가 정교하게 작동하며 사고를 키워가는 것이란 걸

아이를 키우고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런데 문득 오늘 채소의 싹을 보면서, 저부터도 상황에 따른 판별이나 그에 대한 순응 같은 건 제쳐 두고

문득 왜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도 이처럼 인식되는 것은 다 다를까, 뻔히 아는 것에 대한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을 역이용해 많은 것들이 세상에 득으로 바꾸어졌음을 알지만, 사고하며 세상을 사는 게 가끔씩 피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고, 알아보며 살아가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요즘 부쩍 늙었다며 한탄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곁에서 이러구러 들으면서

저의 늙을 일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버스를 탈 때, 스마트폰으로 버스 앱을 검색해서

그리 기다리지 않아도 될 시간에 맞추어 버스를 타러 나가지요.

전에 어머니가 너는 어쩌면 그렇게 딱 맞추어 버스를 타느냐며 감탄하듯 하신 적이 있어, 앱을 알려드렸고 어머니도 요즘은 꽤 이용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한 장소에 대한 효율적인 버스 환승 코스는 역시 제가 짜서 알려드려야 합니다. 제 어머니가 요즘 기준으로는 그렇게 노년도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몇십 년 뒤에 저도 제 아이나, 또래의 젊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보며

부러워 하기도 하고 따라갈 수 없겠다 체념도 하겠지요.

인간이 세상의 변화 속도에 맞추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노년이 되면 일단 변화에 발맞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부터 딸리지요-

세상은 변화를 미덕으로 안다는 점이, 때로 버겁고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저-기로 확 뛰어 버렸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4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0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471
111848 전자기기 바낭_보스 사운드터치 10 [1] 칼리토 2020.03.25 435
111847 1·2당 위성정당에…대박 꿈꾸던 정의당, 지지율 '추락'  [34] 분홍돼지 2020.03.25 1517
111846 듀게 오픈카톡방 [4] 물휴지 2020.03.25 261
111845 코로나 바이러스와 폭력.. [9] 보들이 2020.03.25 1274
111844 우울한 락다운 일상...(라운지, 삼성역) [2] 안유미 2020.03.25 655
111843 히트 [10] mindystclaire 2020.03.24 661
111842 테일러 스위프트님 죄송합니다 당신을 오해했습니다 [7] 모르나가 2020.03.24 1554
111841 한참 리젠이 잘되다가 잠잠한 것 같아서 쓰는 바낭. - 마스크가 여유로와 진 것 같지않습니까? [7] 나보코프 2020.03.24 1153
111840 [핵바낭] 다이어트가 가장 쉬웠어요 [19] 로이배티 2020.03.24 1130
111839 바낭) 5초 룰이라고 아시나요? 그 외 여러가지 [8] 하워드휴즈 2020.03.24 958
111838 (바낭)쓰잘데기 없는 망상... [8] 왜냐하면 2020.03.24 725
111837 이런저런 일기...(시민과 야만인) [1] 안유미 2020.03.23 537
111836 (바낭)와인스타인은 교도소에서 코로나19에 감염이 됐군요. [16] 보들이 2020.03.23 1490
111835 조국 퇴진을 외친 순수한 대학생들. [15] 졸려 2020.03.23 1793
111834 응원 영상 [3] 은밀한 생 2020.03.23 502
» 채소의 싹(의식의 흐름 바낭) [6] 구름진 하늘 2020.03.23 589
111832 도쿄 올림픽 [6] 양자고양이 2020.03.23 1134
111831 바낭) 지구 최후의 밤 이란 영화 보신 분 계시나요? [4] 하워드휴즈 2020.03.23 576
111830 [바낭] 80년대 환상특급 에피소드들 중 기억에 남는 것 [35] 로이배티 2020.03.23 2270
111829 [총선바낭] 국민의당 비례대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3] 가라 2020.03.23 76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