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짧은 감상

2020.05.12 03:25

보들이 조회 수:728

뒤로 갈수록 연결성이 투박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수십년의 격변의 시대를 담아낸 점을 생각하면 캐릭터와 서사가 비교적 균형을 잘 이룬 것 같았어요.

장면 장면의 연출이 참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첸 카이거 감독이 이제는 당 선전 영화나 찍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지만, 장국영에 의한 장국영을 위한, 좀 더 정확히는 청데이라는 캐릭터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데이의 아역배우들 또한 연기도 잘하고 외모도 어찌나 맞춤인지.. 캐릭터 완성에 장국영만을 언급하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강렬하더라구요.

사실 모든 아역배우들이 훌륭했던 것 같네요.


두지(장국영 아역)가 특정 대사를 계속 잘못 말하는 건,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을 흉내내며 살아야 하는 그 현실적인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결국 정체성의 갈등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흔들리는 정체성을 향해 '나는 사내다'를 스스로 되뇌어 왔던 것 아닐지..

시투(장풍의 아역)가 담뱃대로 두지의 입을 쑤셔서 피가 날 때 그건 꼭 처녀성을 잃은 순간의 모습 같은, 혹은 시투에 의해 비로소 두지가 '계집'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장면이었어요. 

그 뒤에 이어진 '나는 계집으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제대로 해내는 모습은, 전혀 슬픈 얼굴도 아니었고 오히려 환희에 찬 얼굴처럼 보였으니까요.


샤루(장풍의)와 주샨(공리)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고, 두지는 장대인에게 강간 당하던 날 아기를 줍게 되고..

꼭 샤루와 데이의 자녀 같은 모습으로 후계자가 될 것 같았지만, 아기는 자라서 홍위병이 되어 세대 갈등의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슬픈 대목이었어요.


샤루는 매력있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던지는 데이나 주샨을 위해 한 번도 완전한 희생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영화에도 좋은 작품이 많아졌는데, 이런 영화를 보면 또 갈 길이 멀구나 싶기도 합니다.

시대와 예술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장대하고 또 울림 있게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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