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레디오어낫의 예고편만 보고 때깔 좋은 버전의 유어넥스트일줄 알았어요. 순둥해 보였던 주인공녀가 갑자기 미칠듯한 전투력을 발휘해서 나쁜놈들을 털어버리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죠. 유어넥스트에 돈좀 더 들여서 세트랑 화면 때깔좀 좋게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늘 바랬거든요.


 다만 예고편만 딱 보고 일부러 더이상의 정보는 찾아보지 않았어요. 나에게 이런 소재가 주어지면 어떤식으로 만들까...라고 생각하면서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2.초반 흐름을 보고 '이거 이 가족들이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나 사위가 올 때마다 일부러 하는 게임인가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에 안 드는 녀석도 제거하고 겸사겸사 가학성을 분출하는 이벤트를 벌이는 건줄 알았죠. 마음에 드는 며느리나 사위가 오면 그냥 적당한 게임으로 넘어가 주고요. 


 한데 보다보니 나름대로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긴 했어요. 이 가문에는 가문을 비호하는 존재가 있고 오래된 기계식 상자에 빈 카드를 넣으면 자동서기로 게임을 점지해주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부자 가족들도 완전 1차원적인 사이코는 아니고 싫어도 살인게임을 벌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죠.


 그런 설정은 자연스럽게, 당시의 기술이나 당시의 구식 무기만 써서 사냥을 한다...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효과도 있어요. 저런 저택에서 나이트비젼에 돌격소총 들고 뛰어다니면 너무 장비빨 싸움이 되어버려서 재미없고...그렇다고 그런 첨단무기를 안 쓰는것도 이상하니까요. 어쨌든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그 존재가 점지해준 게임을 벌이지 않으면 망한다고 믿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진지한 설정이 되는거예요.



 3.한데 이렇게 초반 빌드업은 좋았는데 판을 깔아주는 빌드업까지만 좋고 전개는 좀 밍밍해요. 숨바꼭질에서 살아남으면 가문의 일원이 되는 룰이 아니라, 숨바꼭질 게임이 시작된 이상 무조건 한쪽 사이드는 죽어야 하는...극단적인 룰로 되어 있잖아요. 서로 피튀기게 싸우다가 여주인공이 새벽까지 살아남으면 시아버지가 갑자기 활짝 웃으면서-


 '우리 집안에 복덩이가 들어왔구나! 새애기야 우리 가족이 된 걸 축하한다!'


 ...라고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가 없는 구조라고요. 게다가 여주인공이 안 죽으면 가족들이 돈잃고 사업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해버린다는 상황이라서...이건 도저히 좋게 끝날 수도 없고 전개에 유도리도 주기 힘들어 보여요. 물론 힘들겠지만 새벽까지 살아남으면 된다는 룰이 있다면 가족들 중 누군가가 조력자가 되거나 협상하거나 하는 전개도 가능하니까요. 아니면 가족들 간의 갈등이나 재산문제로, 숨바꼭질을 기회삼아 서로를 제거하거나 이합집산하는 전개도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오컬트적인 요소가 너무 강하게 개입하면서 그런 전개의 가능성은 사라졌어요.



 4.휴.



 5.하여간 르 베일이라는 존재는 그냥 맥거핀이거나 가족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주는 정도로 끝냈어야 재밌지 않았을까 싶어요. 초반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잡는 데는 도움이 됐는데 가족들이 르 베일의 괴상한 규칙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 선택도 제한되고, 가족 간의 갈등이 기껏해야 도덕적 갈등밖에 없게 되니까요. 규칙을 좀 널널하게 하던가, 죄수의 딜레마처럼 규칙 안에서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았을 텐데. 



 6.하여간 이렇게 흑백 생존게임으로 가는 거면 액션이 좀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주인공이 초반에 양부모 얘기를 꺼낼 때 이거 떡밥이겠구나 싶었거든요. 원래 부모가 이상한 전투기술을 가르치다가 이웃의 신고로 아동학대로 고발당하고, 주인공은 딴 가정에 입양된 거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살인게임이 벌어지면 주인공이 진가를 발휘하겠구나...싶었는데!


 다니엘의 아내가 총을 쏘는데 제대로 못 쏘는 걸 보고 '이거 설마 액션물 아닌 건가'라는 걱정이 들었어요. 주인공의 액션이 빛나려면 주인공을 쫓는 사람들도 한가락 해야 하는 설정일 텐데 다들 어리버리해대는 걸 보니 주인공의 전투력도 그에 맞춰서 별거 없을 거 같아서요. 역시 알고보니 주인공은 그냥 쌩 일반인 수준...유어넥스트 같은 대결은 안 일어나더라고요. 솔직이 재미없었어요. 듀나님의 리뷰는 의외로 호평이어서 그냥 한번 감상을 써봤어요. 



 7.물론 이건 내 기준에서 말해본 거긴 해요. 늘 쓰듯이 나는 영화나 드라마가 초인과 초인의 대결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초인이 안 나오거나, 초인이 한 사람밖에 안 나오는 이야기는 싫어해요. 반드시 이야기에는 초인이거나 초인성을 지닌 사람이 등장해야 하고, 그에 맞먹는 수준의 초인이 등장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그건 그냥 현실의 모방이니까요.


 현실에는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사건일 뿐 '이야기'가 되지는 않아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일어난 일이 이야기로 만들어질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초인의 활약이나 초인들 간의 대결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나뉜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이야기가 될 필요가 없는 일'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건 자원낭비라고 여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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