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1 23:49
조정래의 [소리꾼]은 이유리 나오는 판소리 영화라는 것 이외엔 아무 정보도 없이 본 영화입니다. 예고편도 안 봤어요.
그냥 텅 빈 상태에서 보고 싶더라고요.
영화가 시작하고 한 10분쯤 지나자, 무슨 게임을 하려고 하는지 보였습니다. 제가 눈치가 빨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만큼 이해하기 쉬운 영화였어요. 영화의 주인공은 심학규라는 소리꾼이에요. 아내인 간난이 납치당하자, 학규는
딸 청이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는 동안 학규는 [심청전] 판소리를 조금씩 완성해 가요.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심청전] 캐릭터의 모델이 되는 사람들이고요. 아, 약간의 [춘향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학규와 청이의 모험이 판소리라는 장르의 기원이 되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같은 뻥이지요. '인생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 물론 이건 잘 먹히지 않는 거짓말입니다. 창작자가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당시엔 그렇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다 원작이
있지요. 물론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 거짓말을 믿으라고 요구하지는 않아요. 판소리가 만들어지던 18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심청전]을 만들려는 게 목표지요.
각본이 세련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원래 좀 촌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근데 촌스러움 자체는 어느 정도
의도적이기 때문에 단점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요.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아요. 덜컹덜컹 잘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이 후반부 클라이맥스까지 쌓이는데, 이게 제대로 붙을 리가 없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결말은 [춘향전]에서 그냥 따온 것이라 창의적일 것도 없고요.
뮤지컬로서는 괜찮습니다. [서편제]처럼 판소리의 순수성에 집착하는 작품은 아니에요. 하지만 [도리화가]처럼
헐거운 재료로 무리하지도 않아요. 이 정도면 적당히 균형이 잡히고 호소력도 있는 판소리 뮤지컬이에요.
보면서 '차라리 연극으로 만들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상한
이야기도 표현적인 연극적 장치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잘 만든 영화는 아니고, 페이스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며 속이 빤히 보이는데,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촌스럽고 거칠지만 자기만의 매력이 있고 무엇보다 영화가 선량해요.
(20/07/01)
★★☆
기타등등
"암행어사 출두요!"란 말을 들으면 피가 끓는 유전자가 우리에게 들어있는 건 알지만, 이 영화에서는 너무 쉽게
쓰인 것 같습니다. 요새 전 암행어사 자체가 편리하게 꼬리를 자르는 핑계 같아요.
감독: 조정래,
배우:
이봉근, 이유리, 김하연, 박철민, 김동완, 김민준, 정무성, 임성철,
다른 제목: Sorikkun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movie_Sorikkun.php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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