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링거> 보고 왔습니다.

2020.07.20 22:56

Sonny 조회 수:678

정성일 평론가가 프랑수아 오종의 <두 개의 사랑>을 gv 할 때 강력하게 추천했던 영화여서 언젠가는 보리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용철 평론가나 허지웅씨도 두 영화가 영화적 유전자를 계승한 영화라고도 말했었구요. 두 명의 쌍둥이 정신과 의사가 한 여자를 공유한다는 소재가 우연의 일치로 겹칠수는 없겠죠. 그냥 영화를 보다가 좀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변태는 변태를 알아보고 흉내내는구나... <데드 링거>가 쌍둥이의 결합을 향한 근원적 욕망이라면 <두 개의 사랑>은 한 사람을 쌍둥이로 분열시키려는 욕망일 것입니다. <데드 링거>가 쌍둥이들 자신의 이야기라면 <두 개의 사랑>은 쌍둥이를 관찰하고 그들과 엮이는 한 여자의 이야기일 것이구요. 


<데드 링거>는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본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보는데, 정말 구토를 할 것 같더군요. 시각적으로 역겨운 느낌이 그렇게까지 많은 영화는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메스꺼웠습니다. 왜 근친상간이라는 현상을 현실적으로 접하면 뭔가 굉장히 역하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잖아요? 섹스를 육체적 결합 혹은 유기체적 연결이라고 치고, 근친이라는 관계를 육체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관계로 놓고 본다면 쌍둥이간의 정신적 연결을 샴쌍둥이라는 육체적 연결을 통해 비유하는 멘틀 형제의 정신적 연결은 가장 동질성이 높은 개개인이 가장 밀접하게 붙어있다는 점에서 아주 역겨웠습니다. 특히 가장 놀랐던 장면은 엘리엇 멘틀이 쌍둥이 매춘부를 자기 방으로 부르는 장면이었는데, 한 명에게는 자신을 자신의 이름인 엘리라 부르게 하고 다른 한 명에게는 자신을 자신의 쌍둥이인 베브라 부르게 합니다. 쌍둥이가 한 개인을 공유하고 나눠가진다는 느낌은 있지만 한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쌍둥이로 쪼개서 다른 쌍둥이에게 나눠갖게 한다는 것은 뭐랄까... 그 순간 자신이 엘리엇도 되고 베벌리도 된다는 그 개념의 발상이 너무 끔찍했어요. 그것도 두 명의 여자랑 그러는 게 아니라 두 명의 쌍둥이 자매랑 그런다는 게... 개념적인 근친상간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냥 근친상간이 섹스에서의 가장 대중적이고 명료한 금기라서 드는 거지 제가 느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역했습니다. 


아무리 쌍둥이일지라도 동질하지만 동일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쌍둥이 드라마의 비극적 공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데드 링거>는 그걸 훨씬 더 뛰어넘었습니다. 둘이 동질한 것은 당연하고, 동일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거의 순교에 가까운 행위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크로넨버그의 영화가 너무 끔찍했습니다. 그냥 끔찍하면 그건 별 게 아닐텐데, 그게 꼭 숭고하거나 아름다운 것과 결합을 합니다. 두 사람은 연결되어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입니까. 그런데 크로넨버그는 이 문장을 살덩어리로 씁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랑 같이 잠을 잘 때, 다른 쌍둥이 한 명이 그걸 옆에서 지긋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 두 형제는 고깃덩어리 튜브로 연결되어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 참 멋진 문장이지만 크로넨버그는 이걸 배를 째고 장기를 헤집는 식으로 묘사합니다. 로맨스가 육체와 결합할 때 그 고통과 타락은 언어의 추상성을 뛰어넘는 보다 생생한 유물론적 공포가 됩니다.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크로넨버그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엄청난 팬일 것 같아요. 


쌍둥이의 드라마는 어떻게든 그 동질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애초에 둘이 닮았지만 다른 사람이잖아요. 두 개의 자아고 두 개의 개체잖아요. 그런데 크로넨버그는 아예 육체가 연결되어있는 샴쌍둥이가 쌍둥이의 원형인 것처럼 전제를 놓고 영화를 끌고 갑니다. 몸은 분리되었지만 정신은 피와 살이 엉켜있는 덩어리 같은 쌍둥이... 갈라졌어야하는데 둘이 붙어있는 채로 살고 있으니 이게 과연 해피엔딩이 날 수 있겠습니까? 그걸 서반구에서 가장 지적으로 섹시한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합니다.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도시에 완전히 적응한 냉혹하고 외향적인 엘리엇, 내향성을 띄고서 본인보다 더 나서길 좋아하는 형제에게 모든 성과를 바치며 종속되어가는 베벌리... 


문제는 이것이 형제간의 계급 투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한명이 배반을 하거나 완벽하게 복종을 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마무리하면 그만이에요. 이 둘의 문제는 훨씬 더 정신적인 것이고 그 갈등은 동등함이나 개별성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형제가 한 대상에게 다른 정서적 반응과 집착을 보이고 그 때문에 점점 찢어지면서 다른 개체가 되어간다는 정신적 통증 그 자체입니다. 근육과 신경이 서로 고생을 덜 하겠다고 싸우겠습니까? 붙어있으니까 무조건 안아프게 되어야죠. 엘리엇과 베벌리는 그렇게 상호의존적인 관계라서 어느 한쪽이 망가지는 게 다른 한 쪽에게도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 정신적 동질성을 끝도 없이 추구하며 동질한 파멸을 추구하는 쌍둥이에게 작은 연민과 불가해한 혐오감이 듭니다. 샷투샷으로 다 쪼개보고 싶은 영화였어요. 살덩어리 편집증 감독에게는 영화의 해부가 최선이자 최악의 감상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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