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 복학왕, 지은이, 현실

2020.08.18 10:36

겨자 조회 수:1787

박인권 씨가 그린 만화 '대물'은 전체 4부작인데 2부는 드라마화 되어 고현정이 출연한 바도 있죠. 박인권씨는 이 만화를  스포츠 조선에서 연재했는데, 만화 3부 '야왕전'의 간략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연재처는 여기입니다.

남자 주인공 하류는 하류가 '천사'라고 부르는 여자친구 다해가 있습니다. 둘다 지극히 가난합니다. 가난을 끊기 위한 사닥다리는 교육이죠. 다해가 교육받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기 위해 남자 주인공 하류는 호스트바에 나갑니다. 그 돈으로 다해의  성형수술을 시켜주고, 대학을 보내주고, 옥스포드에서 경영학 박사를 따게 해줍니다. 하류가 돈을 잘 보내지 않는다 싶으면 다해는 "책임도 못 질 것 왜 날 보냈냐구! 지금 나를 나무에 올라가라 하고선 막 흔들어대는 것 맞잖아?"라면서 압박을 넣습니다. 그렇게 다해가 박사를 따고 오자 공항에는 다해를 인터뷰하려는 기자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면 한국 여자가 박사를 했으면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 이 지점에서 박인권 씨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다해는 KDC 그룹 후계자 백도야에게 시집가서 재벌집 며느리가 됩니다. 

이 스토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작가의 취재부족을 드러냅니다. 경영학 박사는 학교에서 생활비까지 대준다 (하류가 호스트를 할 필요가 없어짐), 영국 최고의 경영대는 옥스포드가 아니라 LBS다 (옥스포드 경영대는 역사가 짧습니다), 돈을 벌려면 박사를 할 게 아니다 (월가로 가든지 창업을 해야합니다) 등 입니다. 취재를 안하고 머릿속에서 그려낸 이야기죠. MBA보다 박사가 더 오래 걸림 -> 뭔가 더 좋은 게 아닐까? -> 더 좋으니까 박사는 굉장히 비쌀 것 -> 남자친구의 고혈을 빨아야 할 것 -> 박사를 하면 한국사회에서 보상을 줄 것 -> 한국사회에서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재벌집 며느리! 라는 의식의 흐름을 읽을 수 있죠. 

박인권의 만화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해줍니다. 여자들이 스스로 돈 버는 현실이 못마땅한 사람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저 여자가 잘나가는 건 남자 고혈을 빨아먹어서 (=돈 + 시집)이라는 편리한 설명을 제공하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교육받은 한국 여자들이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피츠버그 대학에서 공부한 영주닐슨 박사가 베어스턴스에서 일하고 지금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죠. 혹시 S&P Global의 자회사인 켄쇼 (AI 투자회사)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UIUC (University of Urbana Illinois Champaign)에서 박사를 받은 한국 여자 분이란 걸 알고 계십니까? 하버드에서 MBA를 한 박경아씨가 골드만삭스에서 Sustainable finance group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요? 작년에 국내에서도 LG생건에서 30대 여성 임원을 두 명 임명했죠 (각각 버클리 MBA, 서울대 사회학 석사) 올들어 삼성에서는 여성임원을 일곱명 발탁했습니다.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에서 인턴 봉지은은 실력도 없고 학벌도 없습니다. 우기명은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려고 김치공장에도 취직하고 기안그룹에서도 노심초사하는데 봉지은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상사에게 어필할까 밖에 없지요. 봉지은은 배위에 조개를 놓고 깨서 그걸로 40살 상사에게 어필하고, 그 상사는 회식날 술취해서 봉지은에게 키스해버렸다고 우기명에게 밝힙니다.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수아 부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성이 공정하게 경쟁해 능력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활용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처음 묘사에는 성적 모욕의 의미가 있었다. 고쳐 그린 내용은 설사 작가의 주장대로 귀여움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해도 여성은 능력으로 취업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는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여성 지원자 입사시험 점수를 부당하게 깎은 사례 등을 고려하면 정당한 묘사라고 보기 어렵다" 노컷뉴스 

기안84도 세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몸팔아 돈을 벌고 남자들 고혈을 빱니다. '복학왕'이라는 만화 속 지은이는 공부를 안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 지은이는 성적이 좋아도 탈락합니다. 왜냐하면 남성 지원자들의 점수를 이유없이 올려줬거든요. (국민은행 , 하나은행 사례공상속의 지은이는 40살 상사 앞에서 '조개'를 깨고 취업을 했지요. 하지만 현실속의 지은이는 대선후보였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하여 3심에서 징역 3년 6개월형을 확정 짓습니다. 제게는 이 현실속 지은이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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