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냥이

2020.09.25 21:27

은밀한 생 조회 수:520

방금 친구랑 긴 대화를 나눴어요. 친구 직장에 있는 동료에 대해. 완전 드라마 같긴 한데 음. 그 동료가 친구가 마실 커피에 침을 뱉는 걸 봤다는 거예요.
주제는 억냥이에 대한 거예요. 우리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억냥이로 부르기로 했거든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정말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배려가 몸에 배어있고 맘속이 뜨뜻해서 상냥한 게 아니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억지로 상냥한 척’ (이하 억냥이) 연기하는 사람들요. 실은 속에서 온갖 혐오와 시기와 짜증으로 가득한데 그걸 웃음으로 감추는 거예요. 음 가식적인 것과는 또 다른 부분이 있어요. 가식이 컨셉충이라면 억냥이는 뭐랄까. 오물덩어리를 억지로 덮어놓은 느낌이랄까. 차라리 늘 차갑거나 짜증스럽거나 내성적인 사람들은 최소한 쎄한 느낌은 안 들거든요. 그냥 아.. 저이는 좀 그늘진 사람이구나 좀 화가 많구나 예민하구나 등등 그 정도 감상이죠.

근데 억냥이는 아녜요.
뭔가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어요. 징그럽다고 해야하나. 마치 입만 열면 바로 이X 저X 할 것 같은 표정인데 입은 웃고 있단 말이죠. 억냥이와 나 사이에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내쪽에서 전혀 의도한 바가 없는데도 멋대로 곡해하고 결론까지 내버린 다음에 욕을 하며 내가 마실 커피에 침을 뱉을 것 같은 그런 쎄함. 그러면서 씨익 웃을 거 같은. 그리고 딱히 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을 한 게 아닌데도 늘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겨서 미움을 키우는 그런 쎄함. 그런 쎄함이 느껴지는 사람의 웃음소리는 뭐랄까. 분명 웃고 있는데 그게 마치 침을 뱉는 듯한 느낌이더라고요.

친구의 직장 동료가 딱 억냥이었나봐요.
그동안 참 친절하고 상냥해서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워낙 양지바른 언덕의 어린이 출신인 내 친구니까 전혀 눈치 못챈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오늘 점심에 친구 자리에 있던 커피에다 침을 뱉는 걸 봤다는군요. 친구가 너무 놀라서 “지금 뭐하세요?”라고 했는데 그 억냥이가 그러더래요. 환하게 웃으면서. “뭐긴요. 침 뱉잖아요 ㅎ” 그러고선 순식간에 억냥이 자리로 다시 가버렸다는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계속 일하다 퇴근했대요. 친구는 아직까지 허둥지둥이고... 행인지 불행인지 내일은 주말 시작이고. 다음 주 월요일에 대면해야 할텐데, 나의 양지바른 언덕이 감당하기엔 너무 미친 X같은데 참.

억냥이와는 절대 엮이면 안돼요. 눈물보다도 더 미묘한 지점이 많은 게 웃음인데, 웃음에서 뭔가 쎄한 느낌이 들면 그 쎄한 게 대부분 맞더라고요. 사실 어릴 땐 일부러 나의 직관을 공격하면서, 어리석은 인간아 경솔한 인간아.. 너는 모르는 게 더 많은 중생이다.. 자책하면서 늘 저 자신의 직관을 의심부터 하고 봤거든요. 근데 뭐랄까.... 이제 점점 나의 쎄함에는 딱히 반전이란 없는 것으로 자꾸만 확신이 들어요. 뭐 그래도 스스로의 속단을 계속 경계해야겠죠. 그도 나도 어리석은 인간이니까요. 하 근데 내 친구 어떡하죠 속 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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