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긋이

2020.10.29 20:00

은밀한 생 조회 수:777


살면서 가끔 어떤 비슷한 경험을 연달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최근 으응? 하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었어요. 저만 싱긋하기 아까워서 올립니다.

 

# 붐비는 도심 쇼핑몰 화장실.

 

엄마 : 다 되셨습니까

여자아이 : 아직입니다아

엄마 : 이유는 뭘까요오

여자아이 : 돈까스 양이 많았습니다아

엄마 : 혼자서 끝낼 수 있나요

여자아이 : 물론입니다아

엄마 : (저벅저벅 걸어서 아이가 사용하는 화장실 문을 톡톡 두드린다)

여자아이 : 혹시 사기꾼입니까아?

엄마 : 아닙니다

여자아이 : 정말 아닙니까아?

엄마 : 네 저는 엄마입니다

 

이러고 둘이 재밌게도 놀더군요. 옆 칸에 있던 저도 저는 나무꾼입니다아하고 하마터면 동참할 뻔...

 

#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파스타 가게

-대략 8살과 6살쯤으로 보이는 형제가 앉아있는 테이블.

 

: 그거 먹으면 많이 매워

동생 : 맵게 안 생겼어

형 : 맵게 생겼어 먹지 마

동생 : 이거 이름 혹시 알아?

: 할라피뇨 (올 정확한 발음)

동생 : 할리핑ㄴ? 이거 우리나라 꺼 아니지

: 응 이탈리아 꺼 (확신에 찬 목소리)

동생 : 아빤 좋아하시나?

: 아마 그럴걸?

-화장실을 다녀온 아버지가 자리에 앉는다

동생 : 아빠 이거 좋아해?

-손으로 할라피뇨를 집어 들어 보인다

아버지 :

: 아빠 매운 거 못 먹자나

아버지 : 아니? 나 좋아해

동생 : 그럼 나도 먹을래

: 야 너 매운 거 먹으면 설사하잖아

동생 : 궁금해

아버지 : 걍 먹어 맛만 봐 그 정돈 괜찮아

: 아빠!! (한심하단 듯이 한숨) 얘 설사한다니까.

아버지와 동생 : .....

 

결국 그들은 할라피뇨 접시는 저 멀리 밀어놓고 파스타를 맛있게 먹더군요. 저기 할라피뇨는 멕시코 고추야... 하고 싶긴 했는데 그냥 나왔습니다.

 

#조용한 평일의 어느 골목길을 지나 횡단보도

-공기는 맑고 햇빛은 풍만한 오후

 

남자아이 : 엄마 이쪽으로 오세요

-엄마는 횡단보도 신호등만 쳐다보고 있다

남자아이 : 엄마 여기가 그늘이에요 엄마 얼굴 따갑잖아요

-엄마는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신호등이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는데, 남자아이가 엄마의 팔짱을 다정하게도 끼더군요. 어제 밤샘 작업의 여파로 일하다 졸려서 잠시 산책하러 나갔다가 순식간에 잠이 확 깨더라고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안겨버린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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