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5월에 이건 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란 생각에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응급시간으로 예약을 해주더군요. 그럼에도 그냥 만약을 위해서란 생각이었지 정말 크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저를 진찰한 의사는 피검사 결과를 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수술날짜는 지금 당장 잡을 수 없고 이 병원이 아닌 노르쇠핑에서 해야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오늘은 하루 입원해 수혈을 세병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 박사학위도 아무 소용없더군요. 말을 다 듣고 나서 '저 지금 집에 가도 되요?' 라고 되물었으니.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지금 당신이 쇼크상태라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건강이 많이 안좋다고, 그러면서 증상을 못느꼈냐, 어떻게 걸어서 왔느냐 등등을 물어보더군요.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울로프에게 전화해서 오늘 당장 수혈받으라고 한다고, 어쩌면 안자고 저녁에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이건 이때만 해도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말하고, 별일 없지 나이탓이라고 하지? 라며 전화한 소피아 한테 수술하라는데 라고 대답하고 나자 한없이 피곤해져서 수혈을 받기도 전에 병실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돌이켜서 보면 증상은 오래전 부터 있었어요. 특히 작년 11월부터 무척이나 피곤해서 정말 일어나서 일밖에 못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워낙 일도 많았고, (동료가 병가가 나서 갑자기 그의 강의까지 맡아야 했다) 무엇보다 선물이 아빠와의 일, 그리고 지옥에서 온 이웃들 때문에 이사까지 하게 된 때였기에, 수술을 한다고 하자 친구들이 다들, 그 겨울을 기억하고, 사실 그때 네가 너무 피곤해 보였고 힘들어 했지만, 너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 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시간이었습니다. 수술을 하는 게 받아들여지자, 좀 불쌍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힘든 시간을 살았구나, 비정상적으로 피곤해 한게 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그런 때를 지나왔구나. 그리고 나를 참 돌보지 않았구나. 그러면서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고, 그랬더라면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란 생각에 또 서글퍼 지더군요.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작게 한다고 했어도 수술이었고, 지금보다 일찍이라면 정말 혼자였을 때인데 수술하라고 했으면 선물이랑 어떻게 했을 까, 얼마나 막막했을 까, 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지금이 수술 할 수 있는 때이구나. 지금은 내가 수술을 해도, 선물이는 자기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다. 얼마나 애를 위해 다행인가.


수술도 잘 되었고 육체에 있던 문제가 해결 되어 회복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문제는 가을 학기 시작하면서 왔습니다. 여름을 휴가대신 병가로 보낸 제가 직장에 돌아오자 일이 산더미더군요. 병가는 회복의 기간이지 휴식 충전의 기간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밀린 일들 뿐 아니라, 덧붙여 지난 봄 약속한 박사 학위 논문 심사 opponent 까지 해야했고, 아침에 일어나 일로 시작해서 쉬는 시간은 아이를 데리로 오고 가거나, 집안 일 하는 걸로 여기로 자가 근무중인, 정말 주말없이 보내는 날들이 계속되자 어느 날부터 아침에 가슴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마치 잘개 부서진 얼음조각 안개로 가득채워진 듯한 머리속에서 제 생각의 파편들이 마구 흩어져서 그 파편들을 쫓아 가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친구이자 부서장인 소피아가 occupational health care에 연락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상담자는 내 하루 일과를 듣더니, 내가 아픈게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본인은 내 건강이 더 나쁘지 않은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그렇죠?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아플만 한거죠? 란 생각에 부뜻하더군요. 그러다가 만남을 끝내고 나가자 오분도 안되어서 그렇지만 그가 한말은 단지 내가 limitless로 일하니까 그렇다는 거지 내가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 건 아니잖아? 다른 동료들은 나보다 일이 더 많고 나 같이 주말에도 일하지만 아프지 안잖아? 내가 못나서 그래, 란 생각이 스며들더군요. 다행히 잠시 뒤 내 사고를 분석하며 아 이런 tragic comedy 라니, 쓸쓸함을 소리낸 큰 웃음으로 가립니다. 


제가 속한 Institution의 prefect인 기셀라에게 말할때도 같은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대화는 health care 조치중 하나입니다). 대화가 끝날무렵 제가 갑자기, 나 자신한테 정말 실망이에요. 나는 이 나이가 되면 좀 더 현명하고 내 안에 있는 두려움 이유없는 불안 이런건 사라져 있을 줄 알았는데, 나 자신을 더 잘 콘트롤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육체는 나이대로 먹었는데, 하하 이런 나이 들면 당연히 얻을 줄 알았던 지혜로움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라고 하자, 기셀라는, 아 그런 뜻이었어? 라며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무슨 말인가 바라보니, '나는 아까 실망했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하고 했죠, 커피공룡 당신이 얼마나 성공한 사람인데 실망을 했다고 하는 가 라고' 성공이란 단어를 들으면 몸에 두드레기 일어납니다. 기셀라는 더 나아가서, '생각해봐 혼자 이민오고, 다른 나라 언어로 박사를 따고, 스웨덴 내에서 가장 많은 걸 요구하는 직장에서...' 진짜로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이거 (우리 학교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먼저 듭니다. 원래 제가 제가 '성공적'으로 한 것들은 저 혼자 했다는 생각이 없고 저의 단점은 오로지 저의 문제란 생각이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제가 매일 해내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매일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하고 특별히 주목받지 않는 다 해도 쌓이면서 하나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어떤 때는 그 무게가 참 무겁다 싶은 일상적인 삶을 버려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데 왜 그건 당연하지 하고 무시하는 지.  


새벽 다섯시에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자, 그것도 일로 커피마시고 일한다고 하자, 상담자는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중에는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언제나 그렇듯이 웃으며 나는 unwillingly morning person 이라고 하자, 함께 웃더니 심각하게 아침을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시작해 보는 게 어떻냐고 하더군요. 그의 제안대로 일대신 산책을 갑니다. 집에서 5분 걸어가면 린쇠핑에 유일한 물가인 개천이 나옵니다. 물가를 따라 산책을 갑니다. 며칠 전에 보니 어른도 만나기 어려운 시간에 아이 둘이 어딜 가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이 시간에 아이들이? 잠시 생각해 보니 아침에 엄마 아빠가 직장을 일찍 하면 아이들이 있을 수 있는 morning care를 향하고 있는 듯 해보입니다. 생각합니다. 저 아이들의 엄마 아빠도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리고 저 아이들도. 매일 매일 생을 중요히 사며 열심히 사는 우리, 잘 하고 있다고 말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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