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2021.01.07 20:25

은밀한 생 조회 수:507

아주 짧은 한 순간이나 말 한마디로 인생이 달라지는 그런 경험.
꼭 타임슬립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경험들은 우리의 삶 도처에 도사리고 있죠.

예전에 다니던 소위 대기업 어쩌고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
당시 창업주의 동생의 딸이면서 길 가다 누구나 한번씩 돌아보게 되는 용모의 언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나요. 별 뜻 없이 주고 받는 회식용 토픽에서 누군가 살짝 무리수를 던졌는데. 개그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죠. 어 방귀냄새 난다! 뭐야 뭐야 아무 냄새 안 나는데? 너 개코냐 누룽지 냄새겠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갑자기 그 언니가 우아아앙 정말 아기같이 서럽게 우는 거예요. 나 안 꼈어요!!! 이러면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무도 니가 꼇지 안 했는데. 정말 아기 같이 엉엉 울더라고요. 나 아녜요!! 나 방귀 안 꼈어요!! 서너번 외치면서 계속 우는 그 언니를 앞에 두고 나머지 사람들이 우왕좌왕 각자의 방법대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애쓰던 기억이 나요. 어어 그래 너 아냐 우리 김대리가 많이 힘들구나 아 왜 갑자기 울고 그래 언니 어디 아파여? 한 사람의 통곡으로 모두가 우렁차게 합심하던 어느 연말 회식 자리.

이후로 제가 그 나인투파이브 물신 숭배의 세계를 결국 버티지 못해 관두고 난 뒤 종종 소식을 전해주던 귀여운 친구가 말하길, 그날 그 언니가 파혼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파혼당한 이유가 약혼자의 외도로 인한 거였다고.. 그런데 그날 회식 자리에서 그 언니를 가장 적극적으로 위로하던 한 남자. 그리고 나 방귀 안 꼈어를 만들어냈던 바로 그 남자. “어 방귀냄새 난다”고 외쳤던 그 남자와 결혼 날짜가 잡혔다며 청첩장이 왔었어요.

잘 살겠죠.
잘 살기를.

구수한 둥굴레차 냄새를 맡으면서 난 왜 이 일화를 떠올린 건지....
따뜻한 차 한잔이 소중하네요.
한파속에서 듀게분들 모두 무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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