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정치

2021.03.25 00:12

Sonny 조회 수:1086

정통파 정치인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야심, 그러니까 다수의 지지를 받고 공직을 차지해서 자신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사회의 부조리를 뜯어고치겠다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정치인에 도전한다는 거겠죠. 이런 정치인은 고전적이다 못해 고루합니다. 운동권 인사들이 투쟁현장에서의 공을 인정받고 직을 차지하게 되는 유행은 끝났습니다. 현대의 정치는 오로지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뭔가 보여줄 것 같고, 뭔가 새로운 것 같고, 딱히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고 기성 정치에 맞서는 대안이 될 것 같은 느낌 자체가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미국 대통령을 뽑아냈고 그 결과를 혹독하게 맛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현대정치가 고도화된 산물입니다. 안철수가 무슨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요? 이렇게 말하면 문재인이나 이명박과 비교하면서 그들은 얼마나 내실이 있는 정치인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안철수는 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합니다. 기본적으로 (구) 새누리 출신의 정치인들에게는 능력주의라 쓰고 계급주의라 읽는 계층과 경제자산의 순환이 거의 고정된 사회를 추구합니다. 심화경쟁의 장에서 피라미드에 올라온 자만이 결과물을 누릴 수 있으며 그게 안되는 자들은 알아서 개천의 용이 되라는 식입니다. 문재인 혹은 더민주의 정치인들은 "그래도 그건 심하다"는 부분적으로만 인간적인, 정치적 포지션이 있습니다. (물론 이게 더민주의 한계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텅텅 빈 박근혜씨도 박정희의 유산을 계승하며 수구보수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맞든 틀리든 정치적 기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가 정치적 대안으로 떠올랐던 계기는 뭔가요. 무슨 정치적 활동이 아닙니다. 무릎팍도사라는 예능에 나갔던 게 가장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이는 청문회 때 당시 새누리 의원이었던 강용석의 발언으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안랩 주식을 두고 이야기하면서 무슨 예능에 나가서 유명해진 기업가를 뭘 이렇게 띄워주냐면서 격분했죠. 그는 이후 썰전의 게스트로 활동할 때도 죽자사자 안철수를 공격했습니다. (자주성가의 대표격인 그가 안철수에 이렇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김종인도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당연합니다. 정치적 지향점이 어떨 지언정 어쨌든 정치의 프로들이 보기에는 안철수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짜스러움이 있습니다. 이건 정치적 세계관의 충돌, 여야 보수 이런 대결이 아닙니다. 무슨 어중이떠중이가 자꾸 물을 흐리냐는 프로로서의 고까움이죠. 안철수의 새정치? 그게 뭔가요. 이 사람 지난번 총선 때 그 쥐꼬리만한 당의 후보들이 국민의당으로 나갔을 때 혼자 마라톤 하고 있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한 간판스타가요. 선거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당을 이루고 세력화시켜서 자신만의 정치적 차별점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냥 마라톤 합니다. 아마츄어리즘이 너무 심해서 광인 수준에 도달합니다. '제가 엠비 아바타입니까?' 그 희대의 개소리를 하던 것도 안철수의 정치적 역략을 고스란히 증명합니다. 


안철수가 하는 유일한 정치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합병하듯, 자기 자신을 자신만큼 유력하고 혹은 역사가 더 오래된 정치인들과 손을 잡거나 연을 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력 노나먹기입니다. 자신의 지명도와 호감(?)형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의 지지세력을 세일즈합니다. 안철수의 유일한 정치적 성취는 뭔가요? 보수(라 쓰고 극우라 읽는) 새누리도 아니고 진보(라 쓰고 보수이면서 흉내도 못내는) 더민주도 아닌 3지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이 성취가 안철수를 보여줍니다. 이 사람은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거나 지금 사회에 아주 필요하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제시하질 못합니다. 내 편 하든가 아니면 표싸움 해서 너가 지든가. 오로지 세력 갈라치기 뿐입니다. 이건 선거정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것만 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은 단일화입니다. 나랑 단일화하든가 안하든가. 박원순이 서울 시장 할 때부터 안철수는 단일화 카드를 들고 흔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재인과 단일화를 두고 협상했습니다. 그리고 들어간 민주당에서 생각만큼 지지를 못받자 그 민주당에 나가서 국민의당을 만들었습니다. 단일화를 파기하고 힘을 약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별 힘을 못쓰다가 이번 서울 시장선거에 나와서 뭘 하고 있나요. 또 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는 죽을 때까지 단일화밖에 안합니다. 그게 자신의 원앤온리 자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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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일화에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습니다. 개빻은 극우만화가 이케가미 료이치가 그린 정치만화 생츄어리에서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는 여당으로서의 위치가 간절해도 정치적 기조가 다르면 절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철수에게 그런 게 있습니까. 문재인한테 붙었다가, 이번에는 오세훈한테 붙습니다. 아무리 서울시장이 좋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양극단을 오갈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진보진영(쓰면서도 황당한데 일단 이렇게들 구분하니까)의 단일화로 떠오르고 더민주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인데, 지금은 그 반대편인 (구)새누리에 가서 정치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건 철새도 뭣도 아닙니다. 애초에 진영이 무의미할 정도로 정치적 색이 없으니까 펼칠 수 있는 행보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이 없다는 건 이렇게 무섭습니다. 누가 됐든 팔릴 것 같으면 자기를 판다는 마인드입니다. 


어쩌면 아이티업계 세일즈맨다운 가치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성공했다고 취급받는 스티브 잡스는 어땠습니까. 이 사람은 팔아야 할 컴퓨터 기능이 완성도 안됐는데 프레젠테이션부터 하면서 사기를 쳤던 사람입니다.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과 가치관 같은 게 전무합니다. 그냥 세일즈맨답게 자기가 팔릴 것 같으면 어디든지 가서 자기를 팝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창당하다시피한 정당이 다 깨져나가도 저렇게 무책임한 채로 자신의 세일즈만 합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트럼프처럼 대단한 쇼맨십이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나르시시즘도 없다는 점입니다. 대선토론때의 실패를 만회하지 못하고 계속 구설수만 일으키는 것도 당연합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하드웨어가 잘 돌아가겠습니까? 안철수의 공허함을 증명하려고 비유를 들었던 인물들이 너무 대단한 엔터테이너들이 괜히 송구해지는군요. 그 정도로 안철수는 풍선 같은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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