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4 22:42
오늘 밤 10시 50분 EBS1 영화는 리 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입니다.
듀게분들 대부분 보셨을 것 같고 이미 내용과 결말을 다 아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요. 저는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이 영화의 결말에서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저는 아직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고통스러운 경험을 글로 쓸 수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으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자신이 써내려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허구적인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새로운 이야기를 쓴 사람은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자신의 삶에 대한 또 다른 진실한 기술임을 믿을 수 있어야
고통스러운 경험을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그 새로운 이야기는 또 다른 층위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겠죠.
그래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파이와 동물들간의 이야기는 결말에 제시된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담고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두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어요.
결말에서 나온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뭐였는지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오는데요.
(아직 이 영화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마우스로 긁어야 보이게 했어요. )
구명보트 위에는 다리 다친 선원(얼룩말), 어머니(오랑우탄), 요리사(하이에나), 파이가 있었고 다리 다친 선원이 치료를 받지 못해
요리사가 다리를 잘라야 했고 그 잘린 다리를 미끼로 물고기를 잡아 먹었고 다리 다친 선원이 죽자 그 몸을 요리사가 먹었다고 했죠.
그런 요리사의 행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머니가 요리사와 언쟁을 벌였고 요리사가 어머니를 죽이자 파이가 분개해서
요리사를 죽였고요.
이런 이야기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시 한 번 보면서 확인하고 싶어요.
아직 이 영화 못 보신 분들, 혹은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같이 봐요.
2021.04.25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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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서 하이에나가 오랑우탄을 물어뜯는 걸 보고 파이가 분노했을 때 갑자기 리처드 파커가
보트 안에서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죽이죠. 그래서 저는
리처드 파커 = 파이가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 혹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성격적인 부분
으로 생각하고 영화를 봤는데 그러면 이 영화는 호랑이와 맞서는 모험영화가 아니라
자기자신의 어두운 감정/성격과 맞서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영화가 되죠.
살아가는 것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어떤 부분과 싸우고 화해하고 공존을 모색하며
훈련해 나가는 과정이 되고요.
그런데 파이는 리처드 파커 덕분에 보트 위에서 견딜 힘을 얻었다고 했는데 그럼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신의 감정/성격과 마주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다는 말이 되어 좀 이상해져요.
왜 리차드 파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 버렸는지도 수수께끼가 되고요.
자신과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감정/성격이 마침내 공존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한쪽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이상하죠.
리처드 파커가 사라지고 난 후에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리처드 파커)과 맞서면서 얻었던 살아갈 힘을
무엇이 대신해 줄 수 있는지도 설명이 안 되고요.
차라리 리처드 파커를 파이를 고통스럽게 했던 경험 혹은 그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리처드 파커 = 파이가 구명보트 위에서 실제로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기억
이렇게 보면 파이가 구조되기 직전에 리처드 파커가 뒤고 안 돌아보고 숲으로 들어간 게 설명이 되죠.
파이는 이미 보트 안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고통스러운 경험과 대면하며 그것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나갔고 그것과 화해하게 되었을 때 그 고통스러운 경험은 사라졌다는 게 되니...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경험과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삶을 살아갈 에너지, 혹은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러면 영화 속에서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죽인 것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리처드 파커 = 파이가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 혹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성격적인 부분
으로 해석하게 한 것이 바로 그 장면인데 사람을 죽인 것이 파이에게 일어났을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라면
리차드 파커 = (사람을 죽인 것을 포함하여) 파이가 구명보트 위에서 실제로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기억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또한 리처드 파커가 사라진 후에도 고통스러운 경험은 또 일어날 수 있고 그것과 맞서면서
또 다른 삶의 에너지/의미를 얻을 수 있을 테고요.
파이를 인터뷰 했던 기자가 당신이 호랑이군요 라고 했던 말은 사실상 파이의 기억에 남아 있었던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다르게 해석하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
아, 그리고 두 이야기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물음은 별로 좋은 물음이 아닌 것 같아요.
이 물음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단지 고통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그 고통스러운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겠는가 라는 물음으로 바꾸는 게 더 나아보여요.
왜냐하면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것, 하나는 진실이고 하나는 허구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에 대한
다른 태도를 말하는 것 같거든요. 인간의 경험은 결국 인간이 어떤 경험을 한 후 기억하는 것이고
인간의 기억은 본질적으로 선택적이니 결국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무엇을 기억할 것이냐의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고통 그 자체를 기억할 것인가 그 고통에 부여한 의미를 기억할 것인가.
저는 당연히 그 고통에 부여한 의미를 기억하겠어요. 그 고통으로 인해 제가 제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었다면 그 앎이 그 고통을 의미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