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기영의 팬은 아닙니다.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십여년 EBS에서 상영하는 복원 전 버전인 <하녀(1960)>를 보고 머리를 꽝 맞은 것처럼 놀라기 전에는 별 관심이 었었어요. 이후 2008년 부산 영화제에서 공개한 <하녀> 복원판의 고화질에 감탄해서 dvd를 소장하긴 했지만 다른 작품을 굳이 찾아볼 생각은 안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각종 영화제를 통해서 본 김기영의 다른 영화인 <반금련>이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는 정말 그냥 그랬습니다. 낡아도 분위기 있어 보이던 흑백 <하녀>와 다르게 색깔이 날아간 컬러 영화들은 너무 오래되 보였고, 에피소드 형식인 <나비>는  재미라도 있지 <반금련>은 줄거리도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별로 였거든요.

그런데 윤여정 아카데미 수상기념으로 데뷔작인 <화녀>를 재개봉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선 <충녀>를 상영한다기에 보러 갔지요.


기대는 안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화녀><하녀>와 같은 내용이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는 역시 <하녀> <화녀>보다 낫습니다. 맹하고 순진한 느낌의 젊은 윤여정은 매력이 있지만 귀기서린 괴물을 연기하는 이은심보다는 못합니다. 스릴러와 호러 효과가 강렬한 <하녀>와 달리 <화녀>가 더 수위가 높은 부분은 엉뚱한 서브플롯입니다.

<하녀>와 가장 다른 <화녀>의 점은 주인공이 식모 자리를 소개받은 직업소개소 원장이 고향에서 강간범을 짱돌로 막은 적 있는 명자의 과거를 들먹이며 돈이나 몸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서브 플롯 부분입니다. 이 악당이 한밤에 숨어들어 마구 들이대자 과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던 명자는  마침 손에 잡히는 요강으로 때려서 죽여버립니다.

(이 부분에서 신세대 여러분은 궁금하실 겁니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왠 요강? 하지만 1970년대 초반생인 저도 어렸을 때 집에 요강이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실내 수세식 변기가 있었지만 집에 어린아이나 노인이 있으면 요강을 방에서 사용하는 문화가 남아 있었거든요. 우리 집에 있던 건 <화녀>에 나온 것 같은 빨간 요강이 아니라 평범한 흰색 요강이었지만.)

요강과 함께 분뇨 세례를 받은 협박범은 욕조에 받아놓은 물에 빠져서 욕조물을 *물로 만들고 죽은데, 명자는 이 *물을 술이 취해 물을 찾는 남편에게 먹이고(!), 나중에 깨어나자 그가 술김에 강도를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에게도 살인범은 남편이니 시체를 처리하자고 합니다. 그러자 양계장을 운영하던 아내는 편리한 단백질 분쇄기에 시체를 갈아서 닭에게 모이로 줍니다(!!). 나중에 이 닭들이 낳은 알과 닭을 먹는 간접 식인(!!!)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요.


충녀는 하녀/화녀 시리즈와 다른 줄거리이긴 한데, 비슷한 부분도 있습니다오빠의 학업을 지원하러 술집에 나선 주인공인 술집 고객이자 불능인 남편을 치유해서 그 집에 첩으로 들어갑니다어린애를 원하는 첩을 무찌르려고 본처는 남편에게 약을 먹여 불임수술을 시켰는데(!), 첩과 남편이 살림을 차린 셋집 냉장고에서 어린 아이를 발견(!!) 업둥이를 키우지만, 배고프면 하수구의 쥐를 잡아 피를 빨아먹는(!!!) 이 아기는 어느 날 밤 역시 냉장고에 아기 시체/인형만 남기고 사라져 버립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어떻게 그게 말이되?라고 생각하시는게 당연하지만 정말 이런 식으로 영화가 흘러갑니다;;;;;)

 

, 이 영화 속 쥐는 다행히도 <하녀><화녀>의 시꺼먼 시궁쥐가 아니라 이 집 딸이 쥐띠 해라고 선물로 받은 애완용 흰쥐입니다.(1972년은 쥐띠해가 맞습니다.) 이 악명높은 감독이 젊은 윤여정에게 쥐들을 부었다는 이야길듣고 시궁쥐를 상상하고 질색을 했지만, 흰 쥐하고 해도 그리 상황이 낫지는 않네요. 쥐를 잡아먹는 설정상 아기가 쥐를 손에 쥐는 장면이 나오는데 뉘 집 애기를 희생시켜 이런 장면을 찍었는지 좀 안되기는 했습니다.

영화 막판에 유리 어항에 담아 놓은 쥐들에 물을 부어 익사시키는 장면도 나오는데, 부디 헤엄 칠 줄 아는 쥐들을 누군가 건져 주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대로 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두 영화 다 내가 뭘 봤지? 싶은 황당한 면들이 있어서 이런 두서없는 이야기 밖에 안나와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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