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2 05:33
1.오늘은 들어가려다...역시 금요일이라 뭔가 아쉬워서 뭘할까 궁리해 봤어요. 할것도 없는 김에 오늘 분노의 질주를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아슬아슬하더군요. 영화가 아니라 cgv의 푸드 키오스크가 말이죠.
어차피 분노의 질주는 뻔하잖아요? 현실에서는 차로 절대로 해선 안되는 일들을 2시간 내내 해대다가 마지막에는 토레토가 그 영화에서 가장 말도 안되는 자동차 액션을 선보이며 끝나는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건 분노의 질주를 보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적당한 액션영화를 보면서 팝콘+콜라를 먹는 경험이라서 말이예요. 하지만 10시쯤엔 cgv에서 음식 판매를 중단하고 있으니...팝콘과 콜라는 못 먹는 거였죠.
2.그래서 뭘할까...뭔가 재밌는 걸 하러 갈까 싶었는데 역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들만 널려있어서 말았어요. 하긴 이 세상의 문제가 그거예요. 해봐서 좋은 건 이미 다 질리도록 해봤다는 거죠.
3.이제 인생에 남은 건 뻔한 걸 뻔한 사람과 하거나, 뻔한 걸 새로운 사람과 하는 것밖에 없단 말이죠. 어쩔 수 없죠. 어쨌든 열심히 살아야죠. 그냥...재미가 없어도 오늘 할일 하면서 살 수밖에.
4.휴.
5.인간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는 빈 캔버스를 원해서 그러는 거 아닐까...싶기도 해요. 이미 자기자신이라는 캔버스에는 거의 물감칠을 끝냈으니까요. 새로운 캔버스를 조달해서 아무것도 안 그려진 캔버스에 다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거 아닐까 싶어요.
인간은 어지간하면 자식을 버리지 못하지만 도박에 중독되면 자식조차도 버릴 수 있는 게 그런 이유 아닐까요? 도박이란 것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때까지 평생 그려온 그림은 사라지고 온통 불확실한 미래로 점철된 상황에 완벽히 중독되어 버리니까요. 자기 자신의 캔버스에 그려진, 견고한 그림이 술술 녹아내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도박이거든요.
6.어쨌든 이렇게 무료하다...라는 불평을 하고 있어도 도박을 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감사하곤 해요. 도박에 빠진 사람의 끔찍한 몰골, 끔찍한 상황...테이블에 판돈으로 올려버려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그런 것들을 간접적으로 봤으니까요.
7.요즘은 이런 생각도 가끔 해요. 전에 썼던...도박에 빠진 그 아저씨는 어쩌면 나 대신 망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요. 다른 평행세계에서는 내가 도박에 손을 대서 도박 중독자가 되어버리고 그 아저씨가 나를 가끔 추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고요.
내가 한가지 아는 건 도박중독자는 도박을 할 돈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어쩌면 도박중독보다 마약중독이 덜 민폐가 아닐까 싶어요. 마약중독자도 마약을 할 돈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지만, 마약의 가격은 적어도 정해져 있거든요. 돈을 빌리든 훔치든, 일정 금액이 있으면 한동안은 마약을 빨면서 남에게 민폐를 끼칠 일이 없어요.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왜냐면 마약중독자라고 해서 마약을 100배 가격으로 살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8.하지만 도박 중독자는 돈을 얼마를 주든 반드시 며칠 안에 그 돈을 몽땅 꼴아박아 버리고 다시 돈을 구하러 주위 사람들을 킁킁거리며 찾아다니거든요. 그들은 캔버스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광기에 빠져버렸으니까요. 무료했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던 과거...주위 친구들, 일상의 그 시간대로 말이죠.
그러나 불가능해요. 그렇게 철저히 도박에서 진 상태에서 다시 도박으로 원복할 수 있는 실력자라면 아예 처음부터 도박으로 돈을 땄을 테니까요. 그런 무서운 것을 생각해 보면 갑자기 지금 상황에 감사하기도 해요.
나 같은 사람은 도박에 한번 빠지면 모든 돈을 다 털어버리는 데 한달도 안 걸릴 사람이거든요. 위에는 더이상 할 것이 없다고 쓰긴 했지만 내가 유일하게 손대면 절대 안되는 그것...도박에 아직까지 손을 안 대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사실 '무언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실감이 드는 건 흔치 않아요. 그렇지만 그 아저씨를 가끔 생각하면, 겪어보지 않은 일인데도 내 몸이 부르르 떨리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