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에 과일 채소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제 또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품질도 좋고 가격도 싸요. 아내 분은 씩씩하고 남편 분은 싹싹합니다. 하나라도 더 팔아주고 싶은 가게죠.

어제 문 닫았길래 이상하다? 그랬는데 오늘 점심 먹고 오면서 수박이나 참외 사서 팀원이랑 나눠먹을까 하고 들렸더니 여전히 문이 닫혔더군요. 그런데 문앞에 A4 용지가 붙어 있었어요. 내용인즉슨, "우리 부부가 심하게 싸워서 당분간 문닫습니다. 화해하면 다시 문 열게요."

참 친절한 안내문 아닙니까? 읽노라니 너무 귀여워서 싸운 이유를 적어놨으면 제가 중재에 나서봤을 듯합니다. -_- 


돌아서 회사로 오는데 문득 이 시가 떠올라서요.

어떤 / 김상혁

"어떤 사람에겐 나무가 꼭 필요해. 잘 살기 위해서,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그 소리를 듣는 일이. 어떤 사람에겐 남의 행복이, 또 남이 고통이 필요해. 어떤 가치 없고 무고한 타인의 죽음이 필요하고. 흔들리는 나무 밑에서 그런 비극을 떠올리며 어쨌든 좀 슬픈 것 같은 순간이 필요해. '어떤 사람은 그냥 걷다가도 죽는대. 사랑하다 죽고. 사랑을 나누다가 기쁨이 넘쳐서 죽고. 산에서 죽고. 바다를 건너다 죽는대. 

어떤 사람에겐 행복이 필요해. 꼭 나무를 보듯 불행이 필요하고. 어쨌든 어떤 믿음, 소망, 관용, 이런저런 이야기가 필요해.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 옆사람, 어떤 사람, 그것도 아니면 크든 작든 사람을 닮은 그 무엇의 기쁨과 슬픔이. 우리에겐 우리와 비슷한 형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 옆 사람, 어떤 사람, 그것도 아니면 크든 작든 사람을 닮은 그 무엇의 기쁨과 슬픔이. 우리에겐 우리와 비슷한 형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 어떤 나쁜 마음이라도. 잘 살기 위해서. 조각난 팔과 다리, 터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대한 말이 꼭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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