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도박, 복수심

2021.05.28 09:32

여은성 조회 수:844


 1.요즘 도박과 도박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꽤 자주 쓰고 있죠. 나는 사람들이 도박에서 못 빠져나오는 이유를 도박중독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도박에 빠져서 평생 도박을 하는 막장인생의 경우는 도박중독이라고 해도 되겠죠.


 하지만 중년이나 장년의 나이까지 별 실수 없이, 오히려 모범적으로 반듯하게 살다가 어느날 강원랜드에 가서 순식간에 인생이 망가져버린 케이스는 어떨까요? 사실 그렇잖아요? 며칠만에 수천만 원 털려도 그 정도의 사람이면 그냥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하 씨발 몇천만원 잃었네. 그래도 뭐 없어도 곤란한 돈은 아니지. 돌아가자.'하면서 훌훌 털고 나오면 다시 강원랜드에 발들이기 전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살 수 있죠. 


 지난 몇십년간의 건실했던 삶. 몇천만원에서 2억 정도까지는 하룻밤에 털려도 어쨌든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몇십년간의 연단이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런 하룻밤의 실수로는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몇십년간 열심히 살아온 걸지도요.



 2.하지만 문제는 이거예요. 아직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이지만 그 지점까지 가버린 사람은 귀환한계점을 넘어서 돌진하기 시작하죠. 자신의 원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선을 넘어버리고 말아요. 남아있는 현금 다 털어먹고 나면 가지고 있는 시계, 타고 온 차를 전당포에 잡히죠. 그 다음은 빚을 내서 도박을 하는 거예요. 어째서일까? 멀쩡하던 사람의 뇌가 단 하루만에 도박중독자의 뇌로 변하는 걸까요?



 3.그런 케이스를 지켜본 입장에서...그건 도박중독은 아니예요. '복수심'이죠. 사람들은 도박에서 지고 나면 알게 되거든요. 잃고 나면 깨닫는거죠. 자신이 걸었던 건 단순히 모아놓은 돈이 아니라 지난 인생, 지난 시간에서 열심히 쌓아올렸던 자신의 일부분이라는 걸요. 그 시간만큼의 존엄성을 모욕당한 거예요.


 그럼 그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몇십년동안 열심히 살며 모았던 그런 소중한 가치들을 단 하루만에 빼앗가버린 악마...도박이라는 악마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단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지난 몇십년간을 단 하룻밤만에 부정당하고 모욕당한 것을 되갚아야 한다...저 악마를 한 번은 KO시키지 않으면 나는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도 돌아간 게 아니다. 나는 저 악마의 턱주가리에 한번은 강펀치를 꽂아넣고 돌아가야만 한다. 이대로 돌아가면 저 악마와의 스코어는 1대0으로 남게 된다. 2대1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1대1의 스코어까지만 만들어놓고 집으로 돌아가자. 딱 잃은 것만큼만 되찾고 집으로 돌아가자...라는 복수심으로 움직이게 되는 거죠.



 4.휴.



 5.문제는 이거예요. 내가 전에 썼듯이 사람은 도박이라는 악마에게 이길 수 없거든요. 악마와의 대결에서 1대0으로 졌다면 링에서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녀도 돼요. '야 내가 도박이라는 악마랑 한판 붙었는데 1대0으로 끝났어. 그래도 이정도면 잘 싸운 거 아니냐? 악마랑 싸워서 1대0으로 끝난 거면 열라 잘한거지 ㅋㅋ.'하면서 술안주감으로 삼아도 되는 거죠.  


 그러나 문제는...악마와 1대0으로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계속 덤비면? 1대1로 만들고 끝내자고 계속 덤볐다간 뼈도 못 추려요. 2대0, 3대0, 5대 0, 10대 0...싸우면 싸울수록 악마의 승리 횟수만 늘려줄 뿐이지 이쪽이 승리할 일은 없거든요.

 


 6.사실 잃은 돈의 회수만 고려한다면 온갖 선물이나 금융투자, 아니면 코인을 해도 돼요. 뭘 하든간에 도박이라는 악마보다는 만만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도박을 계속하는 사람은 합리적으로 잃은 걸 되찾으려는 게 아니거든요. '복수심'때문에 계속 그러는 거예요. 잃은 돈을 회수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악마에게 도박으로 이겨보려고 계속 덤비는 거죠.



 7.전에 조국을 카지노에 간 사람으로 비유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조국도 강원랜드에 간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죠. 테이블에 앉을 때는 알 수 없고 테이블에서 지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깨달음 말이예요.


 자신이 테이블에 올려놨던 게 뭐였는지는 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거거든요. 지난 몇십년간 흠없이 쌓아온 자신의 존엄성과 평판, 가족들의 인생, 품위...이 모든 것들을 자신이 테이블에 올려놨었다는 걸 승부에서 지기 전엔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조국은 아직도 sns를 하는 것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이번에 책까지 내는 걸 보니 아직도 정치를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강원랜드'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강원랜드'에서 판돈을 되찾으려는 것처럼 말이죠.



 8.사실 조국은 유튜버를 하든 아니면 강연을 하든...자신의 인기와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뭔가를 하면 잃은 걸 상당히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강원랜드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차라리 해외선물이나 마진거래를 하는 게, 강원랜드에서 돈을 되찾는 것보다는 쉬운 것처럼요.


 그러나 위에 썼다시피...강원랜드에서 돈을 잃은 사람은 강원랜드를 떠나지 않아요. 왜냐면 사람에게 있어 그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카지노에서 받은 모욕은 카지노에서만 되갚을 수 있다...라는 생각과 복수심. 그게 그 사람을 강원랜드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거든요.


 그리고 조국 역시...정치판이라는 곳에서 빼앗긴 것들을 정치판에서 되찾으려고 몸부림치는 걸로 보여요. 뭐 이해는 해요. 그는 유능하고 매력적이니까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잃은 자산과 명성을 복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위에 썼듯이 카지노에서 받은 모욕은 카지노에서만 되갚아줄 수 있는 거니까요. 자신만이 아니라...자신과 자신의 과거가 모욕당하고 자신의 가족이 모욕당했는데 어떻게 카지노를 떠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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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용석을 예로 들어보죠. 그 자는 이런저런 구설수를 치른 뒤, 1부 리그에서 뛰는 걸 포기하고 유튜브라는 한급 낮은 그라운드에서 돈을 잘 벌고 있어요. 돈만 주면 중동이나 중국 리그로 가는 축구선수처럼요. 그를 영리하다고 해도 되고 한심한 놈이라고 해도 되겠죠.


 한데 내가 보기에 조국은 강용석만큼 영리해질 수 없는 사람 같아요. 이게 그렇거든요. '영리한'것과 '영리해질 수 있는'것은 완전 달라요. 강원랜드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영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영리해지기 싫은 거니까요. 


 내가 본 도박중독자들...그들은 악마로부터 도망칠 바에는 그냥 악마가 자신을 죽이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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