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텔지어와 데자뷔

2021.06.29 10:13

어디로갈까 조회 수:534

미술작업 하는 선배가 메일로 하소연을 해왔습니다. 그의 고단함에 대한 토로를 접하면서 느끼는 건,  그쪽 분야는 데자뷔보다는 노스탤지어를 하나의 사이버네틱스 메소돌로지로 생각하고 작업한다는 것이에요. 
노스탤지어라는 것은 무엇보다 회전력이 있죠. 하나의 소용돌이vortex로서 상승기류를 만들어내는 힘 같은 것.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 용, 용솟음의 다이내믹스가 느껴집니다. 노스탤지어라고 하면 흔히 과거회귀, 벤야민의 멜랑콜리, 그 회억하는 것의 풍요로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전혀 다른 궤도진입을 읽어요. 그렇다고 현대의 미술작업인들이 벤야민의 미디움medium개념에서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개념적 기원에서 '언어의 마법성'이라는 것은 빈 공간이 어떻게 공명으로부터 새로운 생성을 자아내는가 하는, 마치 우주물리 같기도 하고 마르키온파 그노시스 같기도 한 미디움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니까요. 노스탤지어 역시 하나의 빈 공간을 갖고 있으며, 거기에는 여전히 마법적인 기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는 나이 때문인지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살면서 노스탤지어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과거의 어느 타이밍을 유토피아의 전미래 시제로, 이미 지나갔지만, 미래화하는 과정의 사후재구성 작업의 토대로 생각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타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뭔가 논리적 구축보다는 길을 재촉하면서 가로질러 가는 쪽을 좋아하는 편이랄까요.

아무튼 노스탤지어가 데자뷔를 능가한다는 것은 오른나사 모양의 회전이 왼나사 모양의 회전보다 앞선다는 것이고, 그것은 과거로 뚫고 들어가는 동시에 미래로 뚫고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이 회전력은 지켜보노라면 꽤 재미있어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웜홀을 뚫는 것처럼. 
과거라는 시제와 미래라는 시제 사이의 양자얽힘을 살펴보자면, 양자라는 개념에 비춰볼 때, 과거도 시간 입자가 되고 미래도 시간 입자가 됩니다. 동시에 과거는 시간 파동이 되고 미래도 시간 파동이 되는 거고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싱크로나이즈드 댄스가 발생하는 거죠. 시간의 춤입니다. 저는 인간을 맴맴 돌게 하는 시간의 춤을 종종 느껴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대학을 다닌 뒤에 주로 베를린이나 뉴욕에서 살았던 백남준 씨가 한 말 중에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한국인은 수렵민적인 성향이라서 사냥감이 있으면 어디든 따라가며 산다"고. 
사냥감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 그것을 찾아 이동하기 마련이지만 일본인은 어민적인 성향이라고 할까, 원양어업에 나서기는 해도 자신의 포구,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고 애쓴다고... 

유목민의 노스탤지어란 무엇일까요.  수렵민은 기원전 사만년 전에도 이미 1년에 3,000킬로미터를 걸어서 이동했고, 바다 건너 대륙에 당도했습니다.  호주까지 대양을 건너서 여행한 것에 대해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달에 간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크나큰 역사였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미 일만 년 전에 인류는 아프로-유라시아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는 것이죠.  물론 느슨한 천라지망의 형태였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하늘과 땅을 그물망으로 짠 셈입니다.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은 그때 이미 신화라는 드림타임dreamtime의 비전으로 생겨나서 그 천라지망을 아울렀던 것입니다.


덧: 보스가 이번 주까지는 출근하지 말라는 특명을 내려서 탱자탱자 놀아보려고요. hehe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68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20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314
116560 日애니 잘못 봤다간… '아동포르노 소지죄'로 처벌 [14] 黑男 2012.10.08 4457
116559 연예인 동경,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 [20] 기린그린그림 2012.04.05 4457
116558 [흠] "김기덕 감독, '고지전' 개봉에 또 쓴소리" [16] kiwiphobic 2011.07.14 4457
116557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21] 보들이 2013.09.13 4456
116556 청담동 앨리스 정말 참신하네요 ㅋㅋ (이번화까지의 스포) [6] 로즈마리 2013.01.06 4456
116555 저스틴 비버 근데 진짜 뭔가 레즈비언 축구선수 같아요 [7] 소전마리자 2012.10.01 4456
116554 오늘 무한도전 [6] 달빛처럼 2012.10.20 4456
116553 공공장소에서 지나치게 떠드는 사람들, '왜' 그러는걸까요? [26] 단추 2012.02.07 4456
116552 아이돌을 싫어하는 간단한 이유 [26] 잉여공주 2011.01.26 4456
116551 한국에 미국식 테이크아웃 중국집이 있나요? [12] 불별 2011.02.10 4456
116550 학점 종결자 [17] 01410 2011.01.11 4456
116549 충격과 공포의 치즈팬더 [17] tigertrap 2010.08.04 4456
116548 현아 'Ice Cream' 티저 (주변에 사람있나 살피시고 게시물을 누르시길ㅋㅋ) [10] 탐스파인 2012.10.19 4455
116547 남자의 재력과 여자의 외모 [11] 메피스토 2011.07.20 4455
116546 웃기고, 화나고, 그리고 무서워지고.jpg [19] 루아™ 2011.04.25 4455
116545 전주 영화제 현장 판매 티켓 질문, 전주 맛집 공유를 빙자한 듀9 [34] 벚꽃동산 2012.04.23 4455
116544 이런분위기에 질문하나.1만원대 저렴한 와인 추천좀~굽신. [19] Hedwig 2010.11.09 4455
116543 듀게 댓댓글 써보세요. 듀게 모바일로 접속하시면 됩니다. [19] 서리* 2010.10.24 4455
116542 이승기에 대해서 [10] 가끔영화 2010.10.04 4455
116541 [영화 질문] 임상수 하녀에서 이정재 욕-_-의 의미가 어떤 거였나요? [7] 키엘 2010.07.07 445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