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돌봄의 정치

2021.07.04 14:18

Sonny 조회 수: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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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집에 가서 조카랑 놀아주고 왔습니다. 처음 보니 조카가 무척 귀엽더군요. 아이들의 뽀송뽀송함은 아직 인간의 사진기술이 담아내기에 역부족인가 봅니다. 아기의 볼은 만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말랑말랑함이 있습니다. 계속 뽁뽁 찌르고 쓰다듬고 놀았습니다. 아기가 아직 어려서 아주 가끔 우에우에 하는 소리 내는 거 말고는 달리 의사소통도 할 줄 몰라요. 저, 저희 부모님 이렇게 난생 처음 보는 거인들이 자기를 보면서 마구 얼굴을 만져대니 귀찮았을지도 모릅니다.


귀여운 감정은 금새 지나갔습니다. 이 아기를 달래고 챙기기 위해 제 동생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데 보고 있는 제가 다 피곤해졌으니까요. 모유 수유하랴, 수유 다하면 안고 도닥여줘, 그 와중에 아기가 게워내면 그거 닦아줘, 그리고 새 턱받이 갈아줘, 기저귀 갈아줘, 적당히 놀아주고 재울 시간 됐으면 자장가 불러줘, 그리고 거실에 있는 티비로 캠 연결해서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 


저보고 좀 안아달라고 하는데도 이게 은근히 노동이더군요. 은근히란 말을 쓸 필요가 없을려나요. 약 6kg의 아기를 한팔로 안고 계속 들고 있으니 힘이 부쳤습니다. 거기다가 들고 있는 게 상자나 그냥 짐덩이면 상관없는데, 살아 움직이는 아기라서 더욱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기가 아직 목근육이 발달이 안되어있어서 뒷목을 부조건 받치고 있어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하더군요. 거기다가 이 아기가 저한테 안겨있는 게 편한 상태인지 어쩐지 모르니까 동생한테 수시로 체크를... 안겨있는 채로 수시로 아둥바둥대는데 혹시 불편해서 그러는건가 싶어서 몇번이나 긴장했습니다. 물론 동생은 원래 그래~ 라면서 태연하게...


지금 자란 성인들은 모두 이렇게 타인의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요구하면서 자랐다는 게 좀 사회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약자이고 어른이자 부모인 강자로부터의 끝없는 이해와 포용과 돌봄을 받으면서 하나의 사회적 개체로 자라나는 거겠죠. 하나의 사회는 수천 수만의 약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사회는 사회적 약자와 그 약자가 죽지 않게끔 하는 상대적 강자들의 나눔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닌지. 사회가 반드시 혈육관계의 부모 노릇을 할 책무는 없습니다만 약육강식 약자도태 같은 룰을 따르는 건 더더욱 안되겠죠. 약자를 외면하는 순간 사회는 거의 망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약자인 시절을 거쳐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강자가 되고, 그 강자가 되지 못한 존재를 외면하는 사회는 단순한 야만이나 야생의 생태계가 아니라 사회 본연의 법칙을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알아서 크거나 강해지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조카를 보면서 제가 얼떨결에 가지고 있는 신체적, 사회적 성인으로서의 지위를 좀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동이 과연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생률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한쪽이 지는 부담은 많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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