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과 논쟁의 악화

2021.07.11 04:09

Sonny 조회 수:740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70220500000640



여가부에 따르면 MS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인수한 후 보안 문제를 이유로 기존 마인크래프트 계정을 MS 자체 서비스인 엑스박스 계정과 통합하는 과정에 있다. 계정 통합 과정에서 이용자를 성인으로 한정하면서, 국내 이용자들 사이에선 "한국에서만 셧다운제 때문에 마인크레프트가 '19금'이 되게 생겼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이 기사를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건이 생각보다 간단했으니까요. 게임사가 이용연령가를 높인 겁니다. 그래서 이용연령가에 미달되는 사람들은 "가입이 불가능해졌고" 게임을 못하게 된 거죠. 이건 셧다운제랑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셧다운제는 밤 10시에 청소년이 게임을 못하는 거고, 이 MS 사태는 아예 가입을 못하는 거니까요. 미성년자가 가입을 못하게 된 현상과 미성년자가 밤 10시가 넘어서 게임을 못하는 상황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설령 셧다운제를 비판한다 한들 별개의 사건을 무슨 인과관계인 것처럼 엮을 필요가 없습니다.


몇몇 유튜버들이 안티페미의 시점에서 여가부와 마인크래프트 상황을 묶어놓고 이야기했을 때, 이 사실관계를 밝히는 이 기사도 빠른 시일안에 나온 편입니다. 그런데 그 흐름은 끊기지 않습니다. 사실 관계가 별 소용이 없는 거죠. 어찌됐든 안티페미의 시점에서 여성가족부는 악의 축이고, 게임 셧다운제의 제정에는 분명 한 축을 담당했으며, 그 악의 축을 비판하는 건 정당하니까, 마인크래프트 이슈에 대한 본인들의 이해가 얼마나 틀렸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 게시판에서도 비슷한 논쟁의 흐름이 관측가능합니다. 여가부는 하는 일이 없고 아무 도움도 안되는 기관이니까 폐지하자고 하는 이들이 여가부가 청소년 보호 게임 셧다운제를 전적으로 주도해서 나라를 망쳤다고 주장합니다. 완벽한 모순이죠. 애초에 한나라당 시절의 국힘당이 해당 법안을 제출했고, 그 뒤에는 당연히 기독교 단체들의 게임 때리기 여론조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책임 소지도 묻지 않습니다. "아무튼 여가부가 잘못했음" 이라는 결론은 이미 정해진 상태니까요.


제가 예전에 어떤 남초 커뮤니티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본 게 생각이 납니다. 한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어떤 남성회원이 글을 썼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 사건은 한 여성이 한샘이라는 한 회사의 남자 세명에게 고루 성폭력을 당했던 사건입니다. 1차로는 동기 남자가 그 여성을 화장실 도촬을 했고, 2차로는 그 도촬건을 고소하는데 도움을 준 팀내 상사가 그 여성을 강간했습니다. 3차로는 이 강간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인사팀쪽 높은 직급의 남자가 이 여성을 성희롱했습니다. 어떻게 한 회사에서 한 여성이 이렇게까지 성폭력을 중첩해서 당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제목은 대충 이렇습니다. "한샘 성폭행, 진실은 무엇일까요." 1차와 3차는 여자가 피해자인 게 분명한데, 2차 사건인 강간에 대해서만 진실이 뭔지 알 수가 없고 여자가 남자를 무고한 게 아니냐는 일종의 진실게임같은 글이었습니다. 여자가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해도 그 일을 저지른 가해자 남자에 대한 분노는 스킵하고, 무조건적으로 여자를 의심하는 시점에서 작성되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여자를 의심할 때, 남성중심적인 작은 사회는 엄청나게 상상력이 자유로워지고 모든 현실적인 개연성을 다 소거시켜버립니다. 아무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빠져버리죠.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시점이 고정되어있으면 무슨 논쟁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사실관계가 아니라 남성에게는 무관심하고 여성에게는 선동을 동원해서라도 가혹한 비난을 장전하고 있는 성차별적인 세계관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틀린 소리를 해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여자는 맞는 소리를 해도 일단 틀렸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게 당연합니다. 


최근의 손가락 게이트를 보세요. 별의별 기업과 공기관에 '집게와 엄지만 벌리고 있는 제스쳐는 작은 성기 사이즈를 조롱하려는 남성혐오적인 제스쳐다'라는 본인들만의 세계관을 다른 모든 세계에 강조합니다. 이 때 사실관계는 중요치 않게 됩니다. 창작자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 손가락 모양은 다른 데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기호다, 페미니스트들은 저런 식으로 포스터에 혐오기호를 숨기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이 무의미해집니다. 중요한 건 "분노한 남자들은 어쨌든 안틀린다"는 권력적인 기싸움 뿐입니다. 본인들이 화를 냈으니까 상대가 사과를 해야한다는 이 지극히 진상스러운 짓이 페미니스트를 탄압하는데는 아주 당연해집니다. 최근 브레이브 걸스 멤버가 '오조억'이란 단어를 썼으니 그게 남혐이든 페미가 아니든 어쨌든 자신들한테 사과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어떤 주장이 어떻게 틀렸는지 사실관계를 따지는 게 아니라 틀린 주장을 계속 반복하는 화자 자신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사이비 광신도들에게는 아무리 교리다툼을 해도 무의미합니다. 그냥 광신도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본인들이 보게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방법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게시판에서만 해도 제가 "분노한 남자들"과 "한남동 한끼줍쇼" 등의 비논리적인 분노가 어떻게 지금의 손가락 게이트로 번졌는지 그 맥락을 분명히 전시했지만, 아직도 어떤 남자들은 자기 주장이 틀렸다거나 '페미들이 손가락 제스처로 남혐을 조장한다'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닫힌 세계관을 부수는데는 역사적 맥락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그나마 이 게시판이니까 안티페미적 세계관을 그렇게 당당히 주장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안티페미적인 망상을 확대재생산하는 사람들을 보면 피로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여가부를 욕하는 것, 여가부 해체를 주장하는 것, 여가부나 페미니스트들을 간단히 비웃는 사람들은 이제 그런 세계관을 좀 돌아볼 것을 권합니다. 


@저는 항상 회원 글보기를 통해 어떤 회원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아예 쓴 글이 없다면 모를까 쓴 글이 몇개 이상되는 경우에는 한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건 지난 글들이 일관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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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블랙 위도우 단독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남자들이 셀프 남혐을 당해서 어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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