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왔다

2021.07.11 09:19

어디로갈까 조회 수:721

여러 생명체 중에서 제가 가장 예뻐하는 게 새입니다. 아버지 증언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를 익히기 전부터 저는 새들에게 다가가 조잘거렸다고 해요.  제 집 베란다 창턱에 새들이 모여들어 시끄럽게 떠드는 게 우연인 것만은 아닌 거죠.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인간세계의 여러 언어를 익히면서부터 저는 새들과의 소통기능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 -

오늘 새벽. 한 권의 책과 밤새우기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종류를 알 수 없는 새 한마리가 베란다 창틀에 날아 앉아 '저 달빛을 좀 보렴'이라는 듯 꾸꾸거리더군요.저는 그 새가 의미한 '달빛'이란 말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었을까요? 네, 네 그동안 제가 쎃아온 자연과의 시어가 작동했던 거죠. 하하.

인간 사이에만 아니라 어떤 생체명체와의 소통에도 언어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생명 간의 관계에는 하나의 - 독특하게 다른- 세계가 필요한데 거기엔 언어만으로는 작동할 수 없는 신비한 부분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매미와 풍뎅이와 참새와 나비와 까마귀가 제 의식을 돌아다녔던 즐거웠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제게 가르쳐준 대자연의 언어가 지금의  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겠죠.
<곤충기>를 쓴 파브르의 글귀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책을 못버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록-_-) 

"내겐 아주 큰 꿈이 하나 있다. 들판에 실험실을 갖는 것이다. 쓸쓸하고 황량함에 갇혀 살 때, 나는 곤충으로 인해 낙원을 갖게 되었다. 
아늑하고 조용한 그 작은 마을에는 온갖 풀과 꽃들이 자라났다. .... 여름이면 이들 모두가 귀청을 때리는 음악대로 변했다. 그들  때문에 나는 도시를 포기하고 시골로 왔다."

음식 쓰레기 봉투를 버리고 올라오는데 어떻게 저를 따라온 건지 모르겠는 까마귀 한마리가 제 뒤로 태연하게,  현관으로 총총 걸어 들어왔어요. 일단 접시에다 물을 담아줬더니 할짝거리고 있는데 이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런지. 문 열어두면 날아가겠지만 그 전에 뭘 좀 먹이고 싶어서 까마귀의 주 음식은 뭔지 검색하는 중입니다. (벌레는 제공할 자신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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