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이라면 단지 성별이 '여성'이란 이유로 장애인보다 여성을 더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점 제도의 수혜자로 여성과 장애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한 공공기관에서 결정한 정답은 여성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가점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에 대한 가점제도는 유지했거든요. 네, 지난 4월 논란이 되었던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이야기입니다. 


1.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지난 11년 개교 이래 국내 벤처기업 육성 및 창업자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청년 창업 지원 사업 중 하나로서 연간 예산은 약 1천억원 가량 됩니다. 국내 청년 창업자들이라면 한번쯤 꼭 도전해보는 프로그램이 바로 청년창업사관학교인데요. 선발될 경우 창업교육뿐만 아니라 사업화 자금 1억원, 사무실 지원 및 졸업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대출 연계 보증 및 투자사 연결 등을 해주는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졸업 뒤 '청창사(청년창업사관학교)'출신이란 프리미엄도 있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청년창업사관학교 출신 유명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한 곳이 얼마전 기업가치 8조를 인정 받은 국내 대표 유니콘 스타트업, 비바 리퍼블리카입니다. 네, 금융 플랫폼 '토스'의 개발사이자 운영사죠. 


2. 


문제가 된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장애인 가점 폐지'는 올해부터 변경된 가점제도가 공개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특허권 보유자, 창업경진대회 수상자, 여성 및 장애니 모두 가점을 0.5점씩 받았습니다. 사회적 경제기업의 가점 (1점) 을 제외하고 모든 가점은 0.5점으로 고르게 분배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그 중에서 장애인 가점만 사라진 것입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관계자는 '장애인 합격률이 낮아 가점제도에서 제외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요. 실제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가점 제도의 취지를 감안하면, 꽤 동떨어진 소리로 들립니다. 이 세상에서 실효성과 효율성의 잣대를 놓고 보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꽤 많은 수의 정책들이 그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하지만 청년창업사관학교의 가점제도가 논란이 된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닙니다. 불과 3년 전에는 단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가장 많은 가점인 3점을 받았습니다. 당시 장애인 가점이 0.5점인 점을 감안했을 때, 6배나 많은 가점 혜택을 받았던 셈입니다. 당시 가점제도에서 또 다른 가점 대상자들은 특허권 보유자 0.5점, 창업경진대회 수상자 0.5점, 전역 1년 이내 장교 및 현역군인 0.5점, 명장 또는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0.5점, 국제기능올림픽 입상 경력자 0.5점, 특허대전 수상자 0.5점, 정부 창업교육과정 이수자 0.5점, 사회적 경제기업 1점입니다. 다시 말해, 오랜 기간 동안 창업을 위해 '정부창업교육(0.5점)을 이수하고, 특허(0.5점)를 한개이상 보유했으며, 창업경진대회(0.5점)에서 수상까지 한 장애인(0.5점)'일지라도 단지 '여성'(3점)지원자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셈이죠. 


4. 


당시 창업자과 예비창업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또 다른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공개된 가점제도 외 '여성' 지원자는 무조건 발표평가에서 평균 이상 점수를 줘서 전체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을 맞춰야 한다더라는 식의 소문이었습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이 아닌 다른 지원자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었지만,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국가 R&D 사업 예산을 따낸 경험이 많은 일부 교수들과 브로커들, 해당 사실을 알고 있는 '여성' 아내를 둔 남자 연구원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교수들은 여자 학부생들을 대표로 세우고, 사업계획서와 발표자료를 대신 만들어줍니다. 아니, 계획서와 발표자료는 브로커들이 만들어 납품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또 남자 연구원들은 전업주부인 '여성' 아내를 대표로 세우고, 사업계획서와 발표자료를 대신 만들어줍니다. 대다수는 합격했고, 사실상 유령기업이 타낸 정부 예산이 제대로 쓰일 리 없겠죠. 또 다른 기업으로 예산을 전용하거나 뒤로 빼돌립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적지 않은 세금이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5. 


단 한번이라도 정부지원사업, R&D 사업 예산을 따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꼭 창업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해집단들이 정부로부터 합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에 대해서요. 그나마 이 같은 '공정한' 공개 경쟁을 통한 선발 및 지원이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뚜렷한 성과 없이 정부보조금으로 돌아가는 수 많은 시민/여성/노동단체들을 떠올리면 그렇습니다. 


6. 


잠깐 이야기가 딴 길로 샜는데요, 청년창업사관학교가 이처럼 장애인보다 여성 지원자들을 대놓고 밀어주는 이유는 다들 아실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창업지원기관마저 이 같은 역차별에 기반한 선발 기준을 갖고있는 현실이 참 암담합니다. 꼭 이 기관에서만 벌어지는 문제는 아니란 사실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상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죠. 참 시시한 노릇입니다. 


만약 위 제도에서 역차별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묻고 싶습니다. 


대체 여성과 장애인 중 누가 더 사회적 약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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