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저는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단짝친구 한명과 어울려다녔는데 서로 다른 중학교를 가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제가 처음으로 가까워졌다 멀어진 타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와 멀어진 것이 그렇게 애석한 적은 없습니다. 간간히 보곤 했지만 갈 수록 어색한 타인이 되었죠.
오히려 제가 겪은 유년기의 가장 뚜렷한 이별은 드래곤볼이 완결되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42권 완결권을 다 읽고 나서 손오공이 떠날 때, 가슴에 구멍이 나버린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제 더는 드래곤볼을 기다릴 수도 없고 앞으로 드래곤볼의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릿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 당시 저는 어려서 그게 상실감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오후 네다섯시의 황혼이 가슴 속에 짙게 깔려서 터벅터벅 집에 돌아가던 그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드래곤볼이 완결되었을 때의 그 기분을 그 때 느꼈다는 걸 이제야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의 그 노래는 대한민국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이들을 이별의 아픔에 빠트렸던 노래일 겁니다. 그의 노래를 들을 당시 저는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 기분을 울어서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이별들을 경험하고 난 지금에서야 저는 그게 이별에 뒤따르는 공허함과 애틋함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만난 적도 없는 그를 통해 저는 처음으로 이별을 배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너무 이르다 싶은, 혹은 가장 잔인할 수 있는 그 때 이별을 결심했던 그를 이제 이해합니다. 아마 그 자신이야말로 이별을 가장 하기 싫었고 고통스러운 당사자였을지도요. 그럼에도 그는 기어이 이별을 감행했습니다. 모두가 얼마나 고통에 휩쌓이더라도,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있다는 걸 그는 이미 알았던 거겠죠. 저는 그처럼 지혜로운 이별을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미련을 갖고 질질 끌다가 한 조각의 추억들도 지키지 못하고 아프지도 않은 이별을 하곤 했죠.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진리를 하나 배웁니다. 아픔에서 도망치는 대신 아픔을 맞닥트렸을 때 그것은 아름답게 남을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