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방학은 끝나가는데, 보는 속도를 글 올리는 속도가 못 따라가서 그간 본 것 중에 할 말이 적은 것들 몇 개를 묶음 처분 해 봅니다. 늘 그랬듯 모두 스포일러는 없어요



 1. 브레슬라우의 처형



 - 폴란드 영화이고 2018년작. 런닝타임 99분에 장르는 간단히 말해 스릴러, 좀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세븐' 짭입니다.



 - 제목의 '브레슬라우'는 지명인데, 이건 독일 땅이었던 시절 명칭이고 폴란드에 속해 있는 지금은 '브로츠와프'라고 불린다는군요.

 어쨌든... 뭐 스토리를 길게 설명할 게 없어요. 앞서 말한 대로 '세븐'의 짭입니다. 뭔가 매우 거창한 대의명분을 가진 살인자가 이 놈 저 놈 죽여서 열심히 예술적으로 꾸며 퍼포먼스를 하고 다니고 그걸 그나마 머리 좀 돌아가는 형사 하나가 막으러 다니는 거죠. 근데 이 영화의 살인자가 역사 덕후여서 그 동네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브레슬라우의 처형'이라는 행사(?)를 흉내내서 사람을 죽여요. 그래서 영화 제목이 저렇습니다.



 - 좋았던 점을 말하자면, 일단 이런 '세븐 짭' 영화가 나름 꽤 오랜만이었다는 겁니다. 그 시절엔 아류가 하도 많이 나와서 하위 장르로 쳐줘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 중에 '세븐'에 범접할만한 영화는 당연히도 없었고 그나마 평작 이상 되는 작품도 드물었죠. 그래서 결국 저물었는데... 그래서 이런 걸 오랜만에 보니 정겹고 좋더라구요. 저런 쓸 데 없는 정성과 노력으로 사람을 죽이는 성실한 살인자라니!! 정말 오랜만이야!! 이런 느낌. ㅋㅋ

 폴란드의 도시 풍경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또 주인공 형사님 캐릭터가 좀 매력적입니다. 스타일링도 독특하고 계속 감정 없이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와 말투로 거침 없이 유능함을 뽐내시는 첫 장면이 참 괜찮다 싶어서 영화의 기대치를 좀 상향했었죠. 그리고 잠시 후 파트너 형사가 등장해서 또 포스를 뿜어낼 때까진 꽤 괜찮았는데요...



 - 음. 결국 별로였습니다. ㅋㅋ 뭐 특정 부분을 콕 찝어서 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식상하고 뻔하게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전개로 점철되더라구요.

 엔드 크레딧 후 기억에 남은 것은 1) 시작은 좋았는데... 2) 그래도 이런 영화 오랜만에 보니 재미가 없진 않네 3) 폴란드도 그렇고 유럽 사람들 정부와 세상에 대한 불만이 정말 장난 아닌갑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어서 반갑!! 뭐 이 정도였구요.

 그러니까 허술한 짭이라도 오랜만에 '세븐' 스타일의 과시적 연쇄 살인마 영화가 보고 싶다! 이런 분들만 보세요. 어지간하면 세븐을 한 번 더 보시는 게 낫겠지만.



2. 스윗하트



 - 런닝타임 82분의 블룸하우스 호러 영화입니다. 



 - 이 영화 감독님께선 앞으로 커리어 잘 안 풀리면 '돈 없이 호러 만드는 법' 강사로 활동하시면 잘 나가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토리는 간단히 요약하면 '무인도에 떨어진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바다 괴물로부터 살아 남는 이야기'입니다.

 무인도인 데다가 공간을 넓게 안 씁니다. 딱 주인공이 처음 도착한 해변과 그 바로 앞의 숲 정도만 배경이고 플래시백 같은 것도 안 나옵니다. 그나마 그 숲으로도 몇 발짝 걸어 들어가지도 않고 영화에 그 흔한 항공샷 하나도 없어요. (아, 엔드 크레딧 올라갈 때는 한 번 나옵니다)

 무인도니까 당연히 등장 인물은 한 명이고... 나중에 뭔가 더 등장하긴 하는데 결국 별 차이 없구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본가는 편했겠단 생각도 들더라구요. '대화'를 쓸 필요가 없잖아요. 까지 적고 검색해보니 각본이 70페이지도 안 됐다고. ㅋㅋㅋ

 그리고 호러 연출은 철저하게 '죠스' 방식을 따르고 있어요. 괴물이 나오긴 하는데 안 보여줌. 소리만 들려줌. 흐릿하게 잡음. 나올듯 말듯 하다가 나오는 장면은 상상에 맡김. 그것도 아니면 아주 원경으로 면봉만하게 보여줌. 뭐 이런 거죠. 제일 웃겼던 건 이 괴물이 그나마도 야행성이라는 겁니다. 예산 절감을 위해 정말 가능한 모든 카드를 다 던져버린 우리 감독님... ㅠㅜ



 - 솔직히 저 82분이라는 런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뭔가 이것저것 열심히 쥐어 짜냈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특히 거의 절반을 주인공의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분량으로 때우는 전반부가 그렇구요. ㅋㅋ 후반부에 주인공에 대해 이것저것 추가 정보가 주어지는데 그냥 그것 자체가 좀 시간 끌기 느낌이 들었어요. 주인공 캐릭터를 살짝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잉여 정보거든요.


 근데 놀랍게도 영화는 꽤 볼만 합니다.

 일단 저 '죠스' 흉내가 그럭저럭 먹혀요. 돈 없어서 그런 거라고 제가 놀려대긴 했지만 감독 연출력이 평균 이상은 되는 듯 했구요.

 '분명히 우리가 아는 현실의 존재는 아닌데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라는 상황이 흥미를 적절히 자극해 주고요. 주인공의 서바이벌 가이드 놀이도, 후반부의 국면 전화도 다 평타 이상은 해줍니다. 그리고 정말 의외로, 그 괴물과의 마지막 한 판 승부가 상당히 재밌었어요. 



 - 그러니까 이건 뭐랄까. 잔머리로 승부하는 알뜰한 저예산 영화들 좋아하는 분들만 보세요. 기대치를 낮춰주면 은근 짭짤 고소한 소품 정도 됩니다.



3. 프랙쳐드



 - 2019년작이고 100분짜리 스릴러 무비입니다.



 - 제겐 개인적으로 '대충 이런 이야기면 기본은 먹고 들어간다'는 이야기 설정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겁니다. '내 가족이 사라졌는데 그걸 아무도 몰라!!!' 조디 포스터의 '플라이트 플랜'도 있었고, 딱 이런 얘긴 아니지만 비슷한 이야기로 리암 니슨의 '언노운'도 있었고... 뭐 그렇습니다만.

 암튼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이래요. 샘 워딩턴씨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차를 몰고 가다가 딸이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갔는데, 어느 순간 짠! 하고 아무도 아내와 딸을 모르는 세상이 되어 버린 거죠. 그래서 그거 찾아보겠다고 난리를 치며 돌아다니는 내용인데...


 

 - 일단 진상이 너무나 뻔합니다. 처음부터 노골적인 힌트를 여럿 던져주거든요. 막판에 잠시 그게 아닌 척!을 하긴 하는데 가짜란 게 너무 티가 나구요. 그래서 정답이 그렇게 뻔하니 과정이 재밌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그냥 이 사람한테 호소하고, 저 사람한테 호소하고, 그것도 안 되니 또 누구한테 호소하고... 이런 걸로 런닝타임 대부분을 채워버리니 지루합니다. 영화가 머리가 나쁘단 생각이 막 들죠. 그렇다고해서 캐릭터에게 몰입될만한 구석을 많이 만들어주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그래서 다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왜 이런 각본으로 돈 들여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 음... 근데 막 인터넷 유저 평가들 정도로 나쁘고 못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확실히 별로지만 그냥 무난하게 별로인 정도. 

 다만 이런 흔한 공식으로 영화를 하나 새로 뽑아내려면 뭔가 차별 포인트가 있어야 했는데, 거기에서 너무 격하게 게을렀던 나머지 그냥 영화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거죠. '플라이트 플랜'이나 '언노운'을 안 보셨으면 차라리 그걸 보세요. 이것보다 훨씬 나은 영화들입니다.



4. 낯설고 먼





 - 이 글의 유일한 제 추천작입니다. ㅋㅋ 근데 런닝타임이 30분이에요. 



 - 그러니까 루프물입니다. 한 젊은 흑인 남자가 원나잇 상대의 집 침대에서 눈을 뜨고, 둘이 하하 호호 서로 꼬시는 대화 좀 나누다가 집에서 혼자 굶고 있는 개한테 밥주러 가는데, 다짜고짜 인종차별 백인 경찰이 달려들어 시비를 걸고 급기야는 죽여 버리는 거죠. 죽을 때마다 루프.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아니 주인공네 개는 주인에게서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인가!!!



 - 노리는 게 아주 정직하고 명백한 이야기입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요.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어요. 주인공이 처음 죽을 때 플로이드와 비슷하게 죽거든요.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영화이고 그게 막판 반전까지 가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력해집니다. 


 그런데 일단 그냥 재밌어요. 루프물 대부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점인 '왜 루프가 되는데?'에 대해 영화 외적으로 답을 줘버리니 따지고들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장점이구요(ㅋㅋ) 음악도 잘 쓰고 연기도 좋고 리듬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가 맘에 들었습니다. 바로 그 직전에 굉장히 강렬한 선동(...)을 한 방 날리는데, 그걸 바로 적절하게 누그러뜨리며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끝내거든요. 해당 사건, 그리고 흑인들이 겪는 비슷한 경험들에 대한 분노도 적당히 표출해주고, 그러면서 김 빠지지 않는 방향으로 무난하게 마무리해주는 느낌.



 - 그러니까 해당 사건에 대한 미국 흑인들의 생각이나 느낌, 태도 같은 걸 이해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게 좋았구요.

 기본적으로 재치있게 잘 만든 단편입니다. 어차피 넷플릭스이고 30분 밖에 안 되니 심심할 때 한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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