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호라는 건 첫경험이 무엇이었냐에 깊히 영향을 받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첫경험이 형의 손에 이끌려 간 동네 아케이드의 알록달록 셀로판지를 붙인 흑백 스페이스 인베이더인 저에게 이미 그때부터 게임이란건 그런 거라고 결정지어진 것이었습니다.

1

그 당시 7살 터울의 형은 동네 아케이드의 스타였습니다. 

일찌기 동네 딱지를 다 따버린후 아이들 사이에 '어딘가에 파묻었다', '불태웠다'는 루머가 나게 하는 등 오징어 게임에 나올법한 각종 아날로그 놀이를 이미 석권한 형이 새로운 세상인 전자오락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100판이 마지막일거라고 루머가 돌던 갤러그를 50판짜리 V자 휘장을 3개 따고선 휑 하니 뒤도 안보고 나가버리는 모습이라든지, 극악한 난이도의 마계촌을 동네 최초 원코인 엔딩을 하고 주변의 갤러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때의 형님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진짜 후광이 보였습니다.

img-5632-1

최초로 집에 들인 가정용 게임기 또한 중학교 시절 전기회로에 빠져들었던 형님이 전기상가 으슥한 어디쯤에서 입수한 DIY 퐁 게임 전기회로 세트였습니다. 

땜질과 실패를 반복하며 며칠 밤을 세운 뒤의 어느날 밤 자던 저를 굳이 깨워서 그 자글거리는 검은 화면에 2개의 흰색 바만 덩그러니 있는 게임을 보여주던 형의 광기어린 얼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image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는 형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게임&워치 류의 듀얼화면의 스페이스 코브라 게임이었습니다. 반다이에서 만들어서인지 은색의 슬릭한 외형에 열리면 푸른 색의 게임기가 나오는 기믹은 너무나 멋졌어요. 그후로 수년간 형제, 자매끼리 부모님 심부름이나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용도로 잘 이용되었습니다.

popy-electronics-game-animest-handheld-game-cobra-space-adventure-professional-occasion-p-image-4328

그후 형은 성인이 되어 게임을 졸업하고 저는 그렇게 혼자 남았습니다.

새천년이 열리고 블리자드, pc방,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었지만 그건 저의 길이 아니었죠. 아케이드 게임, 비디오 게임, 미니 게임기로 컸던 저에게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란 개념 자체가 괴리감이 컸습니다.

47bae5bc29ab9a9c57f9ee4857b562c6

그후로 20년, 이종교배된듯 스위치 게임으로 마침내 접하는 디아블로2는 뭔가 복잡한 심경이 듭니다. 

이 게임은 얼마나 대단한 게임 경험을 안겨주려고 20년전 게임 환경마저 복각하듯 시작하기도 전에 수차례 튕기고 캐릭터가 삭제되기까지 하는 경험까지 굳이 안겨주는걸까? 투덜투덜 욕하면서 꾸역꾸역 액트5까지 왔는데 아마도 최종보스일 바알 바로 앞에서 자꾸 튕깁니다. 이게 뭐라고 미칠것 같습니다. 안되는걸 알면서도 며칠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불꺼진 집앞에서 서성이듯 접속하고 튕기고를 반복합니다.

누가 좀 말려주세요.


 게임중독 자가진단은 스마트쉼센터(www.iapc.or.kr)와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www.cyber1388.kr)에서 할 수 있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65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19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283
117554 풍류대장 5회 [4] 영화처럼 2021.10.29 372
117553 욕망에 관한 몇가지 의문 [10] 어디로갈까 2021.10.29 755
117552 [영화바낭] 제겐 좀 감당이 안 되는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을 봤습니다 [13] 로이배티 2021.10.28 1079
117551 클라리스/더 위치 - 스포 있음 [4] daviddain 2021.10.28 590
117550 [영화바낭] 스페인산 짓궂은 코미디 영화 '퍼펙트 크라임'을 봤어요 [2] 로이배티 2021.10.28 573
117549 가장 큰 과일 잭푸르트 [1] 가끔영화 2021.10.27 546
117548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박은빈의 매력 상당하네요 가끔영화 2021.10.27 569
117547 두분 토론(원희롱, 홍준표, 탄소세) [2] 왜냐하면 2021.10.27 651
117546 베네데타 예고편 [4] daviddain 2021.10.27 509
117545 듄: 파트 2 제작 확정 [3] 예상수 2021.10.27 772
117544 [영화바낭] 메간 폭스가 주인공인데 평이 좋은 영화가 있다길래 봤습니다. '죽을 때까지' [6] 로이배티 2021.10.27 735
117543 국가의 탄생 (1915) [5] catgotmy 2021.10.27 358
117542 듄 봤어요. [4] woxn3 2021.10.26 1076
117541 분노조절 장애인가? 왜냐하면 2021.10.26 485
117540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1] 조성용 2021.10.26 830
117539 미궁 [6] 어디로갈까 2021.10.26 605
117538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6] cksnews 2021.10.26 1038
117537 문레이커 (1979) [5] catgotmy 2021.10.26 3346
117536 [넷플릭스바낭] 듀게 호평이 많았던 연쇄살인범 실화 스릴러 '더 서펀트'를 봤네요 [15] 로이배티 2021.10.26 1429
117535 드라마 연모 [2] 가끔영화 2021.10.25 53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