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현실과 비슷한 독신모, 싱글맘의 독립하기 서사는 정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배우의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고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드라마지만

제가 가장 주목한 점은 가정폭력의 정의가 변하고 있는 점

학대하는 파트너와 헤어진 여성들이 어떻게 자립해 가는가 정말 조용히 오래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알렉스는 눈에 멍이 들고 목이 졸린 피해자는 아닙니다.

신체적 폭력이 직접적으로 없었기에 자신이 가정폭력의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 복지사가 물어 보았을 때도 아니라고 하죠. 학대 받은 적 없다고.


하지만 성을 내며 던진 물건 내 얼굴 옆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깨지고, 겁먹게 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생활비를 주지 않고, 술을 사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바로 학대 상황이라는 것을

가정폭력 대처 강의처럼 실제로 보여주고 있어요.

내 옆으로 날아간 물건이 내 얼굴로 오는 것은 오로지 시간의 문제인 거죠.


그리고 가장 많이 간과하는 것은 

아이들이 받는 피해입니다.

학대상황에서,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그들의 신체에 고스란히 흡수되죠.

알렉스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엌찬장에 숨어 아빠의 폭력을 피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 매디가 벽장에 숨자,  !!! 하며 다시 각성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나가죠. 

정말 안타까운 것은 알렉스와 파트너 숀도 그런 알콜 중독 등 학대 가정 출신이라는 거예요.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네요.


학대 받은 여성들은 보통 7번의 탈출 시도를 하고 8번째에야 성공을 한다고 해요.

일단 애를 데리고 나갔더라도 지원을 받는 것은 첩첩산중 행정적인 장애물들을 넘어야 하고..

파트너가 마구 사과하면서 다시 오라고 하면 나만 참으면 되는 거 아닐까 하면서 다시 들어갑니다.

노숙자가 되거나 돌아가거나 선택의 기로에 있으면 알렉스처럼 다시 돌아가기가 십상이죠.

그리고 반복, 또 반복됩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결혼으로 이민 온 한인 여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수입신부라고 자조합니다)

영어 안되고

직장 없고

아이들 어리고

자기 편이 되어 줄 친구 없는

4중고를 아주 쉽게 겪습니다.

한국에서 아주 잘 나가던 여성들도 쉽게 이 길로 들어섭니다.

이미 아이들 데리고 피해 여성 쉼터에서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부유하기까지 한 친정 식구들이

OO서방 잘 있냐고 물으면 응 잘있다라고만 대답한다고 해요.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경우가 보통 한인 교회의 목회자, 사모들인데

이들은 '가정의 회복과 재결합'이 가장 큰 목적인 분들이라 음....

드라마의 쉼터나 복지사처럼 상세한 서비스는 해주지 않습니다. 화해하라고 하죠.

피해자에게 화해는 가능하지 않아요. 이미 재정적으로 육아의 부담으로 힘의 불균형이 너무 심하거든요.

그냥 암묵적으로 복종하라는 말과 같죠.


제가 최근에 본 경우는 한 여성이 알렉스와 정말 비슷한 상황에서, -맞지는 않았지만 완전 고립되어 있고 생활비를 주지 않으며 계속 폄하,무시하는-

짐을 싸고 나와서 케이스 워커를 만났는데도 계속 걱정스러웠대요.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들을까봐.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을까봐.

하지만 그 워커는 모든 말을 믿어주었고 피해자victim이 아니라 생존자survivor라고 불러주었대요.

그리고 상담을 알선해 주었는데 상담 받으면서 파트너의 편집증적인 성격을 이제서야 인식하게 되었다고,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좋은 점은 그래도 사회적으로 이런 인식과 교육이 확대되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학대 상황에서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있다는 것이죠.

조용한 희망도 그러한 긴 장정을 제대로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독립이 장밋빛인 거 물론 아니죠. 학대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 여성들이 가장 많이 살해당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나오라고 말도 못하고 모든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하는 거고. 

준비를 오래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서류도 챙겨야 하고. 상담도 받아야 하고 세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조용한 희망의 원작자가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것같은데 정말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렉스가 선택한 청소부 일은 사실 굉장히 훌륭한 직업인 것 같아요.

먼지는 사라지지 않으니 언제 어디서나 정기적으로 수요가 있고요. 

청소와 정리를 마치면 뿌듯하고 하는 동안 사색을 할 수 있습니다. 알렉스가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었을 거고.

하지만 맨 손으로 일하고 니트 입고 일할 때는 제가 다 걱정이 되었네요.

고무 장갑 좀 끼지... 앞치마라도 하지 하고.


이걸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영업이 될 만큼 유쾌한 글도 아닌데 이렇게 되었네요.


시사하는 게 많은 드라마입니다. 분명 도움을 받는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 거예요.

강력하게 추천드려요. 리얼해서 답답하다가도 분명히 조용한 희망을 볼 수 있으니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1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4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29
117735 검찰 개종자들이 유시민 이사장 계좌조사 안 했다고 새빨간 거짓말한거 이제야 뽀록 났네요 [12] 사막여우 2021.11.19 946
117734 <파워 오브 독>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준비 - 약스포일러 포함 [1] 스누피커피 2021.11.19 450
117733 현재 개봉중인 엠마누엘 무레의 걸작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한 초강추 리뷰입니다. 꼭 보세요. ^^ [2] crumley 2021.11.19 569
117732 [네이버 영화 할인] 사운드 오브 메탈, 암모나이트, 노바디, 엘르 [4] underground 2021.11.18 334
117731 저 스마트폰 중독 같아요 [6] 가끔영화 2021.11.18 433
117730 [영화바낭] 이명세의 데뷔작, '개그맨'을 봤습니다 [12] 로이배티 2021.11.18 625
117729 세인트 모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9] daviddain 2021.11.18 554
117728 [디즈니+] 뒤늦게 더 페이버릿 광인이 되었어요. [7] Lunagazer 2021.11.18 586
117727 (바낭)hey mama 왜냐하면 2021.11.18 258
117726 풍류대장 7회 [4] 영화처럼 2021.11.18 462
117725 듀게 오픈카톡방 멤버 모집 [1] 물휴지 2021.11.18 244
117724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했을까 [8] 어디로갈까 2021.11.18 769
117723 부스터샷 3~4개월 단축 검토. [3] 삼겹살백반 2021.11.17 711
117722 [영화바낭] '킬러 노블레스 클럽', '안나와 종말의 날'을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21.11.17 361
117721 아버지의 갤럭시 버즈2 사용기 [6] skelington 2021.11.17 1081
117720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차 예고편 [4] 예상수 2021.11.17 442
117719 해리 포터 20주년: 리턴 투 호그와트 티져 예고편 [7] LadyBird 2021.11.17 657
117718 드라이브 마이 카 런칭 예고편 [1] 예상수 2021.11.17 291
117717 [영화바낭] 묶음 바낭 '액션히어로', '인피니트 맨', '퍼펙트 머더: 와이 우먼 킬' [6] 로이배티 2021.11.16 559
117716 흩어진 꽃잎 (1919) catgotmy 2021.11.16 29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