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에 개봉한 영화 강추 리뷰입니다. 다른 곳에 먼저 올려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이 글을 읽으시고 한 분이라도 이 영화를 보러 가시게 된다면 바랄 게 없겠네요. 개봉 이후 관객수가 저조해서 이 영화의 팬으로서 많이 속상한 상황이거든요.)

엠마누엘 무레의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2020)-‘천일야화’의 구성으로 직조된 놀랍고 세련된 멜로 영화

엠마누엘 무레의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2020)은 영화 작가로서의 무레의 위치를 확고하게 할 수 있는 역작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무레 영화에서 연상되었던 에릭 로메르와 프랑수아 트뤼포는 물론이고 자크 리베트와 알랭 레네까지 소환될 만한 영화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프랑스 영화의 전통 속에서 무레의 영화 세계가 집대성된 형태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데이비드 린의 걸작 멜로인 <밀회>(1945)와도 유사한 면이 있으며 우디 앨런의 지적인 면과 재치까지 더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대중에게 흥미를 유발시킬 만한 요소와 재미를 갖추고 있다.

이 영화의 시작은 간단하다. 막심은 사촌 형 프랑수아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 외곽에 위치한 그의 집을 방문한다. 하지만 프랑수아는 다른 일로 잠시 집을 비우고 막심은 그를 대신해 여자 친구인 다프네를 만나게 된다. 둘은 집 주변의 관광지를 구경하는 가운데 서로의 과거 연애담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복잡해진다.

기존의 무레의 영화가 한 인물이 여러 인물들과 애정 관계로 얽히는 하나의 축을 가진 이야기로 전개가 됐다면 <러브 어페어>는 각각 막심과 다프네의 연애담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가 된다는 점에서 무레의 이전 작품과 다르다. 여기에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 프랑수아의 단독 서사가 추가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세 가지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막심과 다프네 그리고 프랑수아의 이야기는 개별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이야기 속 과거 장면에 등장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현재 시점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막심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가스파르와 상드라는 현재 시점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막심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의 회상 장면이 반복될수록 이전 회상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 나오고 그 인물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가 추가로 전개된다.

따라서 막심의 연애담으로 시작된 영화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다프네의 연애담이 추가되고 그런 가운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막심의 회상 신에서 또 다른 연애담이 추가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점점 확장된다. 영화가 결말을 맺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확장은 어느 시점에서 종결되지만 결말을 맺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가 있다면 이 이야기는 무한대로 이어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러브 어페어...>는 무레판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확장성은 셀린느와 줄리의 추격전을 시작으로 3시간 넘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1974)나 담배를 필까 말까를 시작으로 서사가 점점 확장되는 알랭 레네의 <스모킹>(1993), <노 스모킹>(1993)과도 유사하다. 무레는 본인의 영화에서 반복되어 온 연애담의 포맷을 유지하되 그 구조를 보다 심화시키는 서사적 실험을 <러브 어페어...>에서 감행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은 관객들을 화면에 붙잡아두는 효과도 가지고 온다. 관객들로 하여금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프네와 막심이 과거의 연애담을 주고 받다가 중간에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중단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야기가 계속 가지를 치는 마당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이건 직접 스크린으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러브 어페어...>에는 불륜의 관계로 맺어지거나 삼각 관계를 이루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도덕적 잣대로 보자면 이러한 관계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불륜은 관계의 한 형태로 보여지는 측면이 강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영화는 불륜에 빠지는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커플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를 토대로 무레의 사랑관에 대해 얘기해본다면 무레는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과 등치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무레에게 있어서 연애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았던 커플일지라도 어느 순간 어떤 상대가 나타나면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나 그 상대와 다시 연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가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는 감정의 ‘어찌할 수 없음’에 관해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브 어페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러한 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인물들은 윤리적인 인간이 되기를 추구한다. <러브 어페어...>가 통상적인 불륜을 다룬 영화들과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무레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러브 어페어...>는 욕망을 추구하되 그 욕망으로 인해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태도를 지녔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관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무레는 또한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평생 해야 할 우리에게 모든 사랑의 순간이 소중하다고 얘기한다. 지금 현재 시점의 사랑이 더 가치가 있게 느껴진다고 해서 과거에 사랑했던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이다. 이 영화에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 광대>(1950)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 무레는 이 장면을 통해 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나는 신부들의 모습을 각자의 삶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개인들과 연결시킨 듯싶다. 우리 모두는 평생 감정의 모험을 지속하는 감정의 순례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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