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time

2021.11.20 07:08

옛날 옛적에 한 물개가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잘 살았어요. 생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그는 어느날 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다가 이런 각성을 하게 되었죠. '살면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헤엄치는 것밖에 없네. 내 수영 자태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나보다 실력이 없는 고기들도 찾아보기 어려워. 다들 잘한단 말야~'

삶이 무미건조단조롭다는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그의 가슴은 점점 답답해졌어요. 그래서 바다를 떠나 곡마단에 들어가기로 결단을 내리고 말았답니다.

무대 위의 시간이 몇 년 흐르자 물개는 콧등에 물건을 올려놓는 기술이 늘어서 관객의 박수를 많이 받게 됐어요. 빈병, 촛불, 나무막대기, 긴칼, 다람쥐 등등 무엇이나 주는대로 콧등에 올려놓을 수 있었거든요. 여러 신문에서 '위대한 물개'에 대한 기사를 읽노라면 그게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자연스레 셀프 인정하게 되었죠.

어느날, 공연을 다니며 떠돌다가 문득 그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서 옛바닷가를 찾아갔어요. 친구들 앞에서 그는 곡마단에서 익힌 기술들을 뽐내고 도시에서 익힌 속어들과 최신 유행의 옷차림을 자랑했죠. 또한 바닷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여러 사물들을 콧등에 올리는 솜씨를 보이며 끼륵끼륵 웃어댔어요.

자랑거리 레퍼토리가 끝난 후 그가 친구들에게 물었어요."내가 보여준 기술들을 너희도 시전할 수 있어?"

친구들은 모두 할 수 없노라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가 제의했죠. "좋아~그럼 내가 못하고 너희들만 할 줄 아는 걸 보여줘봐."

할 줄 아는 게 수영 뿐이어서 그들은 모두 바위에서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그쯤이야' 하고 곡마단 물개도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죠. 하지만 입고 있는 멋진 도시의 옷과 구두가 방해물로 작용해서 금세 허우적거리게 되었어요. 더구나 몇 년 간 수영을 하지 않았기에 꼬리와 지느러미 쓰는 법을 잊어버렸거든요.

그가 물 속에 여러 차례 가라앉는 걸 지켜본 물개들이 영차영차 구해냈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어요. 친구 물개들은 그의 옛모습을 그리워하며 검소하지만 정중하게 장례식을 치렀답니다.

덧: 어제, 몇 년 전 정계로 진출한 옛상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우리 회사 방침을 놓고 떠난 그분과 다른 입장에서 부대끼노라니 예닐곱 살 무렵 읽었던 동화 몇 편이 떠오르더군요. 그 중 하나를 개발괴발 적어봤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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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영화

2021.11.20 07:18

시간이 좀 빨리 일어난거 아니죠 난 꼬박 샛어요 아 나참, 물개 이야기 가운데 까지만 재밌는데 그럼 끝이 없고, 동화면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 했을까 어른들은 의아해 할듯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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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갈까

2021.11.20 07:26

#가끔영화:
어쩌면 동화가 아니라 단편소설인 것 같기도 해요. 좀 심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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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facer

2021.11.20 12:25

수영은 자전거타는것처럼 한 번 익히면 평생가는 건데, 물개가 수영하는 법을 까먹어 익사했다면 그건 물개가 수영법을 까먹어 익사한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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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영화

2021.11.20 12:29

#singlefacer:
정말 자전거는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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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갈까

2021.11.20 18:39

#가끔영화:
인간의 장기 기억 공간은 둘로 나뉘어요. 절차적 기억과 서술기억으로.
자전거 타기, 수영법, 자판 두드리기, 피아노 연주, 젓가락질 같은 건 일단 '어떻게 하는가'만 익혀놓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절차적 기억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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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갈까

2021.11.20 18:36

#singlefacer:
우화에다 진지하게 팩트를 적용하시면 음... 동물들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자기 파괴적 행동에 이르는 - 자살 -을 선택한다는 연구/주장들이 있죠. 다만 인간의 그것과 구분하면 그건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더군요.
그러게요. 수영법이 체화된 물개가 아무리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었기로 물에 뛰어들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특별한 이유'가 뭘까요. 생각거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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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facer

2021.11.20 21:41

#어디로갈까:
아마도 그 물개는 물개의 본분을 잊고 뭍에서 놀다가 어팀장님에게 단단히 찍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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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2021.11.20 12:40

송충이도 때로는 갈잎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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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갈까

2021.11.20 18:42

#수영:
이 클리셰를 적용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경우에요. 상사의 선택은 분수를 넘어서지 않는 자기 바운더리 내의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 같은 애벌레를 선도해서 다른 세계로 이끌려고 애쓰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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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2021.11.20 13:20

옛 상사는 어떤 기술을 뽐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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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갈까

2021.11.20 18:46

#왜냐하면:
그게 어떤 기술인지 저같은 무기술자가 읽어낼 수 있었겠나요. - -
흐릿하게 느낀바로는 정치계에 들어간 후로 우리 사회의 콘텐츠를 다른 각도에서 읽는법을 익히신 것 같더군요.
이번 2022년 수능에서 난이도가 높다며 화제가 된 문제 중 하나인 수학공식 '(루트3+2)(루트3-2)=-1 따라서 2의 (-1)승=1/2'를 간단하게 풀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시전해보이신 듯 했달까요. (머선 말이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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