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영화네요. 런닝타임은 79분 밖에 안 되구요. 장르는... 일단 '드라마'라고 해두겠습니다. 스포일러는 있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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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저분한 카피가 없고 그림이 적당히 예쁘고... 되게 적절한 포스터입니다. 영화 내내 보게 될 장면이 다 이런 거거든요.)



 - 경기도(아마도?)의 어떤 중학교입니다. 사진 동아리인데 멤버가 여학생 밖에 없네요. 여중이었을까요. 글쎄 뭐 일단 중요하지 않습니다. 암튼 얘들이 동아리 선생님에게서 방학 숙제로 '세상의 끝'을 찍어 오라는 괴이한 미션을 받아요. 이걸 할까 말까 망설이던 애들은 '아 그냥 뭐 1호선 종점 가서 아무 거나 찍어 오자'라는 해맑은 결론을 내리고 약속을 잡고 1호선 안내 방송으로 나오는 '천안-신창' 중 신창역을 향해 떠납니다. 그리고 담당 교사에게 받은 1회용 카메라를 들고 아무 거나 찍다가 그만 이런저런 일정 꼬임을 겪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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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부분은 배우들 연기가 살짝 어색합니다만. 극중 설정으로도 서로 좀 데면데면한 상황이라 그게 진짜로 어색하게 와 닿진 않습니다.)



 - 그런데... 결국 별 일 없습니다. ㅋㅋㅋ 나름 현실 여중생들 기준으로 모험 비슷한 걸 겪긴 해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벌어지는 모든 일은 그냥 일상적이고 특별히 드라마틱한 건 없어요. 이런 순한 맛의 건전하기 짝이 없는 영화를 제가 보게된 건 그냥 이 영화가 제 올레티비 부가 서비스로 며칠 전에 새로 제공되었기 때문이구요. 런닝 타임 짧은 게 맘에 들어서 밥 먹으며 아무 생각 없이 틀었던 거죠. 근데 이 영화가 생각보다 좀 괴상한(?) 겁니다?



 - 뭐가 괴상하냐면요. 분명히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 분위기를 풍겨요. 그러니까 우리의 주인공 배우들이 실제로 같은 학교 사진 동아리 학생들일 리는 없구요. 또 이들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분명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카메라가 아니구요. 카메라가 주인공들보다 앞서가서 좋은 자리 딱 잡고 기다려서 예쁜 그림 따내는 전개도 그냥 수시로 나오구요. 여러모로 그냥 완벽한 픽션입니다만, 보다보면 다큐 느낌이 들어요. 왜냐면 주인공들의 엔드리스 수다 파워!!! 때문이죠.


 여기 주인공 애들은 현실 그 또래 친구 학생들마냥 시작부터 끝까지 입을 멈추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떠들고 진지하게 떠들고 아무 생각 없이 싱겁게 떠들고 그냥 중얼거리듯 각자 떠들고... 게다가 그렇게 떠드는 입이 넷이란 말이죠. 결국 런닝 타임 대비 대사량이 엄청난 영화가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대사들을 감독들이 다 썼을 리가 없어요. 확인해보니 젊은 남자 감독 둘이서 만든 영화인데 그 양반들이 그렇게 리얼한 현실 여중생 수다를 그런 엄청난 분량을 짜낼 수 있을 리가요. 그러니까 그 많은 대사들 중 상당수, 제 짐작에 거의 대부분은 배우들이 서로 친구 먹고서 걍 친해져보자고, 실제 친구인 척 해보자고 떠드는 진짜 수다였을 겁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엔 대단히 드라마틱한 사건이랄 게 없습니다. 중간중간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고안된 게 분명한 전개들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어린 학생들 넷이 낯선 곳에 가서 헤매다 보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들이에요. 이런 일상적인 느낌의 이야기 전개가 위에서 말한 수다와 결합되니 다큐멘터리급의 현실성이 부여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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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끝이란 1호선의 끝을 뜻한다!!! 명쾌하고 좋습니다.)



 - 그럼 도대체 이런 형식을 통해 뭔 얘길 하고 싶은 영화냐... 라고 물으신다면요.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ㅋㅋ 아마 감독들도 이걸 다 찍고 나면 어떤 이야기가 될지 예상을 못하지 않았을까요. '아이디어 재밌는데, 그냥 해보자!' 라는 맘으로 만든 게 아닐까 살짝 의심을 해보구요. 실제로 다 보고 나서도 무슨 특별하고 선명한 이야길 하려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냥 보고 나서 관객들이 알아서 의미를 부여하면 좋고 아님 그냥 분위기만 즐겨도 좋고... 랄까요.


 그래서 좀 괴상한 재미가 있습니다. 보는 내내 영화의 의도가 뭔지 어쩌라는 건지 얘들 하는 짓들은 어디까지가 각본이고 어디까지가 리얼인 건지. 이런 영화 외적인 요소들이 계속 흥미를 자극해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어요. 실제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심심한 편이니 다행인 일이었다고 해야겠죠.



 - 그런데 이게... 역시 좀 괴상한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위에서 말한 수다 말이죠. 이게 진짜 별 중요할 것 없는 그냥 시간 죽이기용 수다일 뿐인데, '진짜 수다일 거다'라고 생각하며 계속 듣다 보면 그게 나름 내러티브가 됩니다. 자연스러운 수다이니만큼 듣다 보면 각각 학생들의 개성이나 성격, 환경 같은 게 조금씩 드러나구요. 누군가의 수다를 다른 누군가가 받아주고 이어가고 이런 상황들 속에서 얘들끼리 관계성이 형성이 되구요. 또 계속 듣다 보면 시작 부분에선 은근히 겉돌던 대화들에 조금씩 각자의 진심이나 속사정 같은 게 들어가고, 그러면서 얘들이 실제로 가까워지는 게 보여요. 그리고 이러한 대화의 발전(?)이 주어진 상황들 속에서 진행이 되니 이것 자체가 의외로 흥미로운 드라마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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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장면을 보면서도 굳이 상상을 하게 되는 거죠. 진짜로 우연히 벌어진 상황이겠지. 쟤는 정말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거겠지 등등.)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림이 예쁩니다. 뭐랄까 그 약간 일본 영화스러운 말갛고 깨끗하게 예쁜 그림을 잘 잡아내더라구요. 그리고 그 속에서 평범하게 정이 가는 어린 학생들이 생기발랄하게 '일상 모험'을 벌이는 걸 구경하니 뭐 막 재밌진 않아도 지루하단 생각은 안 들구요. 


 또 이건 듀나님께서 되게 정확하게 지적하셨던데, 왜 연예인들 나오는 힐링류 리얼 버라이어티 있잖아요? 그런 걸 보는 느낌으로 재미가 있습니다. 근데 등장 인물들이 연예인도 아니고 연기가 뛰어난 배우들도 아니다 보니 어떤 '진실성' 같은 게 느껴져서 몰입감은 훨씬 높아지구요.

 


 - 나름 클라이맥스도 있는 영화입니다. 역시 대체로 하찮습니다만. 아마도 이 네 명을 한 곳에 몰아 넣고 수다의 뽕을 뽑아 버리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 어떤 설정 속에서 얘들이 도란도란 긴 대화를 나누는데. 이것 역시 뭐 그 내용 자체로 대단하다고 말할 순 없거든요. 하지만 뭐랄까, 그 대단할 것 없는 대화가 그 순간에는 정말 그 아이들의 '진심'이 오가는 순간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그냥 그겁니다. 그리고 그게 괜히 감동적이에요. ㅋㅋㅋ 왜 다큐멘터리 영화들 보다보면 가끔 그런 순간 있잖아요. 끈질기게 따라붙은 카메라가 드디어 마치 작정하고 연출한 듯한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잡아내는 순간.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내러티브 없이 흘러가던 이야기가 갑작스레 어떤 내러티브를 완성해내는 순간. 그걸 목격하는 감동 내지는 재미 같은 게 있었어요.


 그리고 그 후에 분명히 약속된 설정이지만 설정이 아니었다고 해도 특별히 의심할 생각은 안 들 정도의 적절한 마무리 장면이 제시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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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제작진이 비를 내리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 정리하자면. 실험적인 형식의 영화이고 그게 또 두 번은 안 먹힐 형식의 영화이기도 해요. 어찌보면 좀 이벤트성이랄까... 그런 느낌도 있구요.

 보는 사람에 따라, 각자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작품입니다만. 최소한 재미 여부를 떠나 의외로 보기 좋고 그림이 예쁜 영화였다는 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일 것 같고. 또 주인공들이 다 성격이 동글동글 귀여워서 부담 없이, 편한 맘으로 보게 되기도 하구요.

 진짜 별 내용 없고 다 보고 나서 각잡고 토론을 벌일만한 내용도 아니고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다 보고 나면 뭔가 기분 괜찮은 잔향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일단 저는 잘 봤구요. 감상 여부는 좀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ㅋㅋㅋ 




 + 사실 이게 영화 특성상 주인공들 수다를 100% 다 알아 먹기는 쉽지 않은 것인데요. 우리의 올레티비는 당연한 듯이 자막은 제공하지 않아서 말이죠. 사실 보는 중에 못 알아들은 대사들이 꽤 많은데...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면서 봤습니다. 대사 알아 들으려고 되감기 반복하고 그럴 영화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일상 수다란 게 그렇잖아요. 뭐 몇 마디 못 알아듣고 그래도 당장 중요한 말이 아닌 것 같으면 알아 들은 척하면서 넘기는 거죠. ㅋㅋㅋ



 ++ 보다보면 이야기 시작 때보다 끝날 때쯤에 배우들이 실제로 많이 가까워져 있다는 게 대놓고 티가 납니다. 아마 사실은 다 처음 보는 사이들이었을 테니 처음엔 어색했을 거고, 끝날 때쯤엔 현실 청소년들답게 나름 가까워졌을 거고, 그런 이유겠죠. 더불어서 감독들이 촬영 현장 분위기도 편하게 잘 유지해준 것 같아요. 그냥 주인공 배우들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당연히 모두 '배우'들입니다. 도입부에 짧게 선생으로 나오는 분들은 검색해보면 이것저것 경력도 있으신 분들이고 그래서 오히려 이 분들은 '연기한다'는 티가 분명히 나요. 주인공 여학생들 중에선 걔중에 가장 연예인스럽게 생겼다 싶었던 학생을 맡은 분 하나만 경력이 있고 나머진 초짜들이십니다. 물론 그 분들도 오디션으로 뽑은 '배우'들이구요. 경력자님께선 '사바하'에서 귀신 여자애 역할로 나온 경력이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이렇게 말하면 실례인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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