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는 묻히고 (르네 고시니) 장 자크 상페의 만화 삽화로 유명해진 캐릭터가 있죠. 어린이 시리즈의 고전인 <꼬마 니콜라>. 아마 상페가 그린 니콜라의 말풍선 "그렇지만, 커다란 걸 원하지는 않아요. 정말로..."가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겁니다.
(1959년부터 수년간 벨기에의 지방 주간지 필코트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연재되었던 작품.[2] 무명 만화가였던) 상페는 이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니콜라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자기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달라는 편지를 씁니다.
<커다란 걸 원하지 않아요>라고 서두를 시작하는데, 이런 의견을 적은 종이가 점점 늘어나죠. 쓰다보노라면 나중에는 불가능한 것까지 원한다고 쓰게 되는 식의 표본을 보여줍니다.
"커다란 걸 원하지 않아요, 정말로..."라고 말하는 순간에 정작 자신이 커다란 것을 원하고 자각하게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자기에게 과분하도록 넘치는 것, 구약 성서의 시편에 나오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기쁨의 표현인 지복의 상태라고요. 그것을 때로 <더 바랄 것 없이 복되다 wunschlos glücklich>라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넘치는 잔은 풍성하다 못해 잉여까지 즐길 수 있는 삶에 대한 이미지인 것이니까요. 조카가 니콜라 이미지를 클수마수 선물로 여러 개 보내줘서 (왜?) 기록해둡니다.
2. 관계 없는 이야기이지만, 문재인 정부 인사들 중에서 자신들의 삶은 누리고 싶을 만큼 살면서 국민에게는 넘보지 말고 들어오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인물들이 몇 분 계시네요.
장하성이 그런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랐으나 수정할 만한 생각을 안 해서 떨려났던 것 아닌가요. 그가 말한 소득주도성장이 '누구에게나 자기 몫을 suum cuique' 이라는 이상의 변질된 실천으로 몰락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강남 부자들이 살아야 할 곳에 치고 들어가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될 이야기를 버젓이 공개 석상에서 했던 게 저는 좀 의아했어요.
경제적 신분을 고착화하고 그에 대해 방어적 논리까지 스스로 펼쳤던 셈이잖아요. 조국과 김의겸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작 자신은 전세 사는 것이 싫어 곧 개발될 부동산에 전재산을 다 털어 넣는 용기를 발휘했으면서 말이죠. 이상과 현실이란 게 따로 놀기마련이지만 굳이 그런 인상을 대중에게 새기는 데 기여할 이유가 있나요?
'내 잔은 넘치더라도 당신들의 잔이 넘쳐야 할 필요는 없다' 라고 오해되는 행동/언설을 하는 분들 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평등에 대한 생각에서 감히 넘어서서는 안 될 그들만의 '인너 서클'을 건드리지 말라는 식의 삶을 경험하면 과연 신이 나는 삶이 되는 건지요?
정작 추구해야 할 삶은 누구에게나 자기 잔이 넘치는 삶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잉여를 즐길 수 있는 삶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이 낙서질을 하는 건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쓰는 니콜라와 저를 동일시하는 까닭입니다. - -: 양귀자의 소설 제목처럼 저도 소망합니다. 제게 금지된 것들을.
뻘덧: 윗집에서 이 시간에 귀에 거슬리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는데 이 추위에 이 시간에 이 클수마수에 어디로 피해 도망가야 하는 건지.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