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이야기

2022.01.06 10:38

MELM 조회 수:1806

이번 선거 과정에서 기존 여의도 문법으로 가장 예상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이준석이겠죠. 

30대가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정당의 당대표가 된 것도 전후무후한 일이지만, 12월 이후 이준석의 행보 역시 전후무후한 일입니다. 

놀랍게도 이준석은 단신으로 (물론 같은 아웃사이더인 홍준표의 약간의 응원 정도는 있지만) 당내 대선후보, 그리고 그 주변세력과 다이다이를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심지어 윤석열이 혁신안이라고 가져온 것에 비토를 놓았더군요. 


보수언론이 모두 합심해서 어쨌거나, 윤석열 이제부터라도 새로 시작해보자! 이러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의 첫 걸음에 똥을 뿌린 거죠.

심지어 조선과 동아는 오늘 사설로 이준석을 비판했는데, 그걸 그냥 무시한 셈입니다. 

다시말해, 이준석은 국힘 뿐만이 아니라 보수언론하고도 척을 지고 있습니다.


유승민이 결국 끝까지 배신자 낙인을 벗지 못했던 것처럼, 이준석은 기존의 보수세력으로부터 배신자 낙인을 지우기가 힘들 겁니다.

그리고 유승민을 사실상 한 때 유승민 캠프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던 이준석이니, 그 상황을 모르지는 않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는 건 뭔가 믿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유승민이 나름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원인은 결국 TK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TK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국 보수세력의 중심에서 세자책봉을 받는다는 소리죠. 

올드보이였던 유승민은 이 기존세력으로부터의 정통성 인준을 포기하지 못했고, 무너졌죠.


제가 보기에 이준석은 유승민과는 다르게, 이제 기존 보수세력으로부터의 어떠한 인준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걸 가능케하는 이준석의 최대 무기는 젊음입니다. 85년 생이죠. 아직 30대 입니다. 10년이 흘러도 한국정치에서는 여전히 젊은 나이로 통할 수 있습니다. 

그때 쯤이면 이준석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기존 6070은 7080이 됩니다. 즉 기존 보수세력은 자연적으로 쇠퇴하는거죠.


반면에 적어도 작금의 이준석의 행보로부터 꼰대부장들을 복수하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2030들은 연령상 한국사회의 주류가 됩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들이받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이준석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겠죠. 

노무현이 '바보'였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준석은 용감한 '또라이'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2030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을 이준석이 젠더갈등을 이용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매우 영악하게요. 

이준석은 젠더갈등을 일베식, 혹은 트럼프식으로 노골적인 언어를 통해 활용하지 않습니다. 

이준석은 언제나 소위 '틀튜브' 식의 덮어놓고 비난하는 식과는 거의 모든 문제에서 거리를 두어왔습니다.

대신 페미니즘의 주장 중 취약한 곳을 '합리적 언어'로 타겟팅해서 비판하는 방식을 취하죠. 


사실상 까고보면 둘 다 여혐이고, 똑같은 놈들 아니냐는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실제적 영향력 상에서 둘은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제도권으로 들어오기가 힘들지만 후자는 언제나 '합리적' 언어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통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관련 문제에서 이준석이 방송 패널로 참석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죠. 한국의 공론장은 이준석 정도의 포장이면 수용해왔습니다.


나아가 이준석의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근본 없이 덜컥 튀어나온 게 아닙니다. 

이준석에게 그 공격은 소위 공정성 그리고 능력주의라는 더 큰 담론의 일부라는 맥락 속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그 공격을 '정당화'시킬 스토리/담론/철학/배경도 활용할 줄 안다는 거죠.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이준석이 페미니즘 공격에 올인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주거든요. 

그 전선에서 상황이 불리해지면, 공정성 및 능력주의로 비판할 수 있는 또 다른 전선을 찾으면 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문제 말입니다.


한마디로 이준석은 일종의 태도는 진보적, 사상은 보수적인 그동안 한국에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의 정치인인 샘입니다.

아마도 이런 점이, 앞으로 이준석을 가장 폭발력이 있는 정치인이자, 진보세력이 가장 경계해야할 정치인 중 하나로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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