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램 보고 왔습니다

2022.01.10 16:23

Sonny 조회 수:485

점심을 틈타 일단 간략하게 감상을 써볼까 합니다. 짧고 망한 글이라도 아예 안쓰거나 쓰다만 걸작보다 낫다는 트위터 글을 봐서요ㅋ

이 영화가 성경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예수가 늘 비유대상으로 삼던 양이란 동물도 그렇고,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마리아이고, 주인공들이 키우는 어린 양은 반인반양(?)의 혼합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자식이 아닌 이 양을 자식삼아서 키우는 것도 성경을 상기시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성경을 신의 자식이 아닌 양의 자식으로 뒤집어서 이야기를 하는지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신의 자식이자 반인반신(이건 기독교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인 예수가 한 일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 것입니다. 신이 인간을 벌해야하지만 신이 자신의 자식을 친히 내려보내서 그 죄를 뒤집어씌우고 인간은 용서를 하셨죠. 영화에서는 이 개념을 뒤집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식을 내려보낸 적이 없으며 인간은 신의 자식을 빼앗았을 뿐입니다. 분노한 신은 자식을 되돌려받고 인간에게 벌을 내립니다. 이것이 목장을 운영하는 부부로 축소된 것이 <램>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성경 이야기를 잠시 미뤄두고 이 영화의 핵심적 사건을 보면 딱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의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가져간 자는 그대로 그 자식을 잃고 어미를 죽인 그대로 살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자기 새끼를 낳은 양이 자기 새끼를 가져간 마리아 부부의 집에 와서 계속 울어댑니다. 마치 자식을 돌려달라는 것처럼요. 맨 처음에 마리아는 이를 무시하지만 양이 계속 울어대자 이 양을 쏴죽여버리고 은폐합니다. 어린 양은 마리아가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전 자식의 이름인 "아따"를 붙여서 양육됩니다. 그러다가 반인반수, 하반신은 사람이고 상반신은 양인 존재가 등장해서 아따의 (양)아버지를 총으로 쏴죽이고 아따의 손을 잡고 되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착취를 고발하는 면이 있습니다. 먼저 동물권이 그렇습니다. 양과 마리아 부부의 관계는 동물을 가두고 키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입니다. 그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명백하게 양을 착취하는 쪽입니다. 그걸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양의 자식을 마리아가 가져간 것과 그 마리아 집에 가서 울어대는 친어미양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모습은 단지 뒤틀린 모성이 아니라 인간의 편의에 따라 동물의 자식을 소유하며 가장 소중한 것마저 마음대로 뺏어가버리는 등의 약탈적인 이미지로 비춰집니다. 양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마리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의 잔혹함을 강조합니다.

결말 장면에서 반인반수를 맞닥트리는 장면은 조금은 뜻밖의 그림으로 전개됩니다.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야생적으로 보이는 외견을 보면 누가 봐도 이 존재가 "짐승처럼" 난폭하게 굴 걸 예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존재는 마치 인간처럼 총을 겨누고 아따의 양아버지를 쏴서 죽입니다. 이러한 묘사는 남편을 죽이는 장면은 마리아가 양을 쏴죽일 때의 모습 그대로 재현됩니다. 이 이미지 덕에 이 씬은 단순한 구출이나 보복이 아니라 "인간의 업보"를 그대로 강조하게 됩니다. 그걸 동물권을 두고 생각한다면 동물을 착취하는 인간들은 그 업보를 그대로 심판받는다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가 혼혈 혹은 이민자의 우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머리는 양인 이 생물은 단순한 "비인간"의 범주에 넣기에는 좀 켕기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양을 애지중지하는 마리아네 부부를 봐도 그렇고, 아예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리아네 형부를 보면 괜히 잔인하다 느껴지죠. 이런 부분만 보면 마리아가 아따를 키우는 모습은 혼혈아나 외국인을 입양해서 키우는 것 같고 그에 대한 차별이 그 형부를 통해 이어지는 것 같죠.
아따가 끝까지 인간의 말을 못하거나 팔 한쪽이 양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내국인과 그렇지 않은 자의 선천적인 차이점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양과 인간의 혼혈인 자식인 아따를 친아버지로 보이는 존재가 데려가는 장면은 사회에서 소외받거나 차별받는 "비내국인"들이 외부에서부터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따가 보이는 일종의 순응성도 꽤 공포스러운데, 그를 여태 키워준 아버지가 피를 토하면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친아버지로 보이는 존재를 자연스레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이 전에 목장견이 살해되었을 때에도 아따는 별다른 제스쳐를 취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양아버지의 품에 안겨있었을 뿐이죠)

그렇다면 맨 앞의 성경이야기로 돌아가 서 이 지점들을 연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예수는 소외받는 자들과 약자들을 위해 이 땅에 임하신 분이니까요.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포기하지 않는 목자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착취당하는 동물 혹은 이민자들의 몸을 빌려 이 땅에 내려온 그는 성경처럼 신의 용서를 실현하기 위해 내려온 게 아니라 신의 징벌을 위해 내려온 것이라는 해석으로 연결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램>의 이야기는 반성경적 우화가 될 것입니다. 인간들이 신성을 멋대로 탈취한 것에 대해서, 왜곡된 애정과 숭배를 퍼붓는 것과 무관하게 신이 응징을 내리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지요. (개신교가 신의 이름을 받들어 얼마나 많은 차별을 저지르고 있는지요...) 그리고 그 응징은 단순무식한 인간몰살이 아니라 인간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는 형태로 진행될지도 모릅니다. 이 때의 응징은 압도적인 신벌의 규모가 아니고 인간의 폭력 그대로 되돌려주는 형식을 띌 것 같기도 하구요. 신이 신의 혼혈자식을 내려보낸 이유는 신의 의지가 아니라 그저 신의 자식을 도둑질한 인간의 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인간이 아끼고 가꾸는 모든 것들이 신의 것을 훔치는 죄인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적 상징에 대한 많은 첨부 부탁드립니다. 저는 동생의 아내를 유혹하는 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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