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렛' 봤어요.

2022.01.29 19:32

thoma 조회 수:307

Starlet,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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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보다 몇 년 앞서 나온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입니다. 

제인과 강아지 스타렛은 직업이 같은 친구 커플과 함께 삽니다. 지나가다 들른 어느 집 마당 세일에서 보온병을 샀는데 안에 꽤 큰 돈이 들어 있네요. 돈 주인 세이디는 여든이 넘은 호호 할머니인데 돈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제인은 돈을 돌려 주려는 마음도 없진 않지만 자신이 가져도 세이디에게 경제적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려는 마음이 큰 상태로 이 할머니에게 우연을 가장해 자주 접촉합니다. 

손녀 아니 증손녀 뻘인 젊은 여성과 이제 운전도 어려운 나이든 할머니가 정서적 통로를 내는 과정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이 두 사람이 모든 면에서 천지 차이의 다른 상황을 살고 있음에도 정서적 통로를 낼 수 있으려면 뭔가가 있어야겠죠. 

세이디는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문 앞 의자에 앉아 나무니 뭐니로 가려서 선명하게 형상이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그냥 흔한 나이 많이 든 할머니입니다. 오래 홀로 살아 경계심도 날카롭지만 평범하고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얻어진 안정과 고독이 장기인 노인입니다. 제인의 직업은 포르노 배우인데 제인은 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남자들을 만나도 팬 관리하는 연예인이 그러듯이 웃음을 머금을 줄 아는,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그에 따르는 애환이나 고충도 다룰 줄 아는 젊은이로 자기 직업을 그저 좀 특수한 직군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포르노 배우라는 범상찮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제인은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하고 상냥한 성격입니다. 나쁘게 보자면 아무 생각이 없이 청춘을 허비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십 대 초반의 흔한 젊은 여성이죠. 회사에서도 제인의 외모나 연기를 인정해 주는지 좋은 대접을 받습니다. 회사가 멀쩡합니다. 세트장 외의 사무실은 사무의 풍경이 일반 회사와 다르지 않네요. 

제인은 세이디가 돈에 쪼들리지 않는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으나 사람의 도움이 종종 필요한 세이디를 도우면서 만남을 이어갑니다. 직업상 남자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고향인 플로리다를 떠난지 얼마 안 되어 많은 시간을 친구와 게임이나 낮잠으로 보내던 차라 자신도 세이디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세이디의 안정적 일상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 생겼을 때 저는 보는 것을 중단했다가 다시 도전해서 끝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지만 감독이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서 보았는데 역시 그러했습니다. 주인공들이 너무 약자들이라 상처를 입는 내용은 보고 싶지 않았어요. 이 역시 저의 기우였습니다. 주인공들은 제 생각보다 내공이 있는 이들이었어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 외곽에 사는 별볼일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이며 이들에 대한 존중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아프고 어려운 일상을 사는 사람들 얘기를 하는데 특별하게 느껴지는 점은 이 사람들 이야기를 외부인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 눈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외로운 할머니나 직업을 밝히기 어려운 포르노 배우의 부박한 나날도 일상은 기쁨과 슬픔과 지루함, 자존감과 다정함과 연민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다는 겁니다. 일상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죠. 

제인 역 드리 헤밍웨이는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증손녀입니다. 세이디 역의 베세드카 존슨은 신인이며 이 영화로 칭찬을 많이 받았고 개봉 다음 해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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