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학교 방역 근황

2022.03.03 21:53

로이배티 조회 수:691

1.

교육부에서 '3% & 15%' 기준을 내걸고 학교 방역 매뉴얼을 제시한지 한 달 좀 안 되었는데요.

그동안 여섯번 정도 바뀌었습니다. 수정판이 계속 내려와요. ㅋㅋㅋㅋ

학교에서 그거 담당하신 분이 개학날 예쁘게 컬러 프린트 & 코팅까지 해서 학급 비치용으로 나눠주셨는데. 다음 날 개정판 나와서 바로 쓰레기통. 그 분께서 다시 컬러로 프린트했지만 차마 코팅까진 못 하고 그냥 나눠주셨는데, 그 날 오후에 개정판 나와서 다시 쓰레기통.


결국 오늘 오후엔 부장들만 불러다 나눠주며 '이건 코팅 같은 건 하지 마시고 그냥 내용 전달만 해주세요'라더군요. 그럴만두 하죠.



2.

근데 오늘 받은 최종의 마지막 final 겸 last 버전(22.03.03.기준)을 유심히 들여다봤는데, 

설명은 되게 복잡하고 긴데 걍 핵심만 거칠게 간추려서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1) 일주일에 두 번 학생들에게 진단 키트 배부. 학생들이 일요일, 수요일에 집에서 진단한 후 음성일 경우에만 다음 날 등교하도록.

 2) 본인 확진이거나, 진단 키트 양성일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등교. (가족 확진, 본인 백신 완료 뭐 다 상관 없음)


 몇 가지 좀 재밌는 점은요.


 일단 1)과 2)를 조합하면 좀 희한해집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집에서 진단 키트 음성 나와서, 월요일에 등교를 했다, 그날 함께 수업 받은 반 학생이 확진이 된다... 라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그냥 등교입니다. pcr 검사는 커녕 진단 키트로 재검사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규칙적으로 일요일, 수요일에 계속 진단 키트를 하고 그것만 계속 음성 나오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월요일에 같은 반에 확진자가 나와도 신경 쓰지 말고 이틀 더 그냥 다니다가 수요일에나 진단 키트로 확인하면 된다는 거죠. 무슨 맥락인지는 대략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고작 두 달 전과 온도차가 너무 커서 당황스럽구요. ㅋㅋ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이 진단 키트가, 의무가 아닙니다. 학교에선 나눠준 후 권장만 하고, 결과 확인 같은 것도 안(정확히는 '못') 시켜요. 오직 양성일 경우에만 사진 찍어서 보내는 걸로. 그러니 코 아프고 귀찮아서 안 할 애들에다가 진단 키트 자체의 오류 확률까지 생각하면 엄...


 덧붙여서, 의외로 학교에 나오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부모가 확진이고 본인은 백신 완료도 아닌데다가 감기 기운까지 있다는데 진단 키트 음성이니까 학교 나오겠다고 고집하는 학생을 담임이 피땀흘려 말리는 광경을 목격했지요. 안 나와도 출석 인정 처리가 되니까 그렇게 하는 편이 여러 사람 안전해지는 길인데, 학생과 학부모가 고집하면 그냥 나오는 거에요. 다행히도 오늘 그 학생은 부모가 납득해줘서 일단 쉬었지만, 어차피 pcr 검사는 못 받으니 아마 내일은 나오겠죠. 엄......;


 암튼 교육부에서 열심히 버전을 올려가며 내려보내는 매뉴얼이란 게, 보면 되게 상세하고 복잡하게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처법을 안내하고 있긴 한데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 내용의 99%가 다 '권고' 라는 겁니다. 확진자를 등교 시키지 않는 이상엔 그대로 안 해도 아무 문제 안 생겨요. ㅋㅋ


 이쯤 되면 사실 교육부의 본심은 이 매뉴얼들로 언플하며 학부모들 안심 시키고 걍 전면 등교 강행 돌파!!! 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3.

이런 거 말고 실제로 학교에서 '방역'이란 건 뭘 하고 있나... 하면요.


교사도 학생도 모두 하루에 두 번씩 체온 체크를 합니다. 일단 출근&등교시 열화상 측정기(오오!)로 한 번. 점심 먹기 전에 체온계로 한 번 재고 기록하구요.

일단 출근하자마자 복도 창문을 다 열고 교실 출입문과 창문도 맞바람이 불도록 열어줍니다. 애들 다 집에 갈 때까지 그 상태 유지.

교실 출입문 손잡이 같은 거 하루에 대여섯번씩 소독하고. 교실에 아예 손 소독제와 일반 소독제를 비치하고 학급마다 당번을 정해서 시간마다 소독을 시키죠.

그리고 중요한 게 '타 학급 학생과 접촉 방지' 입니다. 혹시 확진자 나와서 퍼뜨려도 그 반에서 끝내라는 건데요.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교사들이 복도로 출동해서 밖으로 뛰쳐 나오는 학생들을 계속 교실로 밀어 넣습니다. ㅋㅋㅋ 

근데 엄격히 따지자면 아무 의미 없죠 뭐. 등교길에 함께 오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만나고, 밥 먹고 이 닦으면서 만나고, 준비물이나 뭐 빌린다고 돌아다니며 만나고, 또 어차피 집에 가는 길에 또 만나니까요. 


좋게 말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거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냥 '어쨌든 우린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라는 면피용 노가다... 를 하고 있는 겁니다. 힘 빠져요.


 + 이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별반 무의미한 서류 업무 및 고객 상담(...) 전화 응대 같은 부분은 뺐습니다.



4.

오늘은 수업하다가 문득,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근데 니네 저엉말 솔직히, 코로나 걸리는 게 두렵고 부담되고 그러니?"


다들 피식피식 웃더군요. ㅋㅋㅋㅋ 당연히 전부는 아닙니다만, 생각보다도 대다수가 크게 신경 안 쓰더라구요. 어차피 자기들은 걸려도 경증이 대부분이란 얘길 여기저기서 이미 들었기도 하고. 또 이젠 주변 친구들 중에 실제로 확진됐던 애들이 꽤 있거든요. 심지어 본인이 확진됐다가 다 낫고 등교 중인 애들도 있는데, 당연히 열나고 아파서 힘들었다는 경우도 있지만 훨씬 다수가 '걸린 줄도 몰랐음'이란 소감을 퍼뜨리다 보니 학생들 인식이 이렇게 형성이 됐나 봐요.


"내가 이런 놈들 때문에 이 개고생이라니이이이이!!!!!!!!" 하고 한 번 외쳐주고 수업 했습니다.



5.

결론은 뭐 특별한 거 없습니다만.

그냥 피곤합니다. ㅋㅋㅋㅋ 죽어라 방역에 최선을 다하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정작 지침은 반대로 가는 교육부님들도 피곤하고. 학교에서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신난 놈들 교실로 밀어 넣느라 에너지 쏟는 것도 피곤하고. 사실상 큰 효용이 없는 일에 지나친 노력을 쏟아붇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멘탈도 피곤하구요. 코로나와 함께 입학한 애들 이제 올해가 마지막 해인데 학교랍시고 뭐 해 준 것도 없는 것 같아 아쉽고 맥 빠져서 피곤하구요. 어쨌거나 이 시국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건만 벌써 3년차에 들어섰는데도 끝이 잘 안 보이니 지긋지긋해서 피곤...


특별히 누굴 비난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는 글입니다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교육부는 의인화해서 뒷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뻘글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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