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이방인 봤습니다

2022.07.04 00:02

Sonny 조회 수:673

10581-20953-13.jpg


이 영화의 노출 수위가 대단히 높다는 건 조금 뻔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되물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알랭 기로디는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노출을 왜 굳이 감행한 것일까요. 표현의 방식과 수위는 다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노출이 심하면 그만큼 강도높은 자극을 주고 싶었겠다고 관객으로서 먼저 의심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노출은 성적 자극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때론 너무 적나라하고 가끔은 감정없는 관찰에 그칩니다. 이성애자인 저는 게이 강사자들의 감상에서 조금 놓칠 수 있겠지만, 에로티시즘의 조건 중 하나인 '은밀함'이 이 영화에서는 별로 발휘되지 않습니다. 가끔씩은 영화 전체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보는 느낌마저 듭니다. 어둠 속에서만 낯익은 성기들이 햇볕 아래에서 공공연하게 노출될 때 우리는 그 성기들이 서로 엉키는 성애 장면을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죠.


호수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거리낌없이 전라로 다닙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들의 성기를 정면으로 담습니다. 성애 장면만이 아니라, 이들이 누워있는 방향을 머리부터가 아닌 발바닥부터 해서 사타구니가 정면으로 보이게끔 찍습니다. 이런 화면으로 보면서 관객은 작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말이죠. 신체는 사회적 약속에 의해 특정한 합의를 거친 관계나 상황이 아니면 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섹스 역시 섹스에 참여하는 오로지 둘만이 감각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런 것들을 관객으로서 염탐하면서 순식간에 이들의 성정체성까지 다 파악한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아, 저 게이들은 저 호숫가에서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구나. 이것은 단편적인 정보이지만 이들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공간을 이 호숫가로 한정지어놓고, 이 호수에서 인물들이 하는 건 섹스대상을 찾는 것과 그 대상과 섹스를 하는 것 뿐이니까요.


영화 초반에 주인공 프랑크는 호숫가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합니다. 이로 인해 호수의 성질은 단순히 동성애자들이, 모여서 섹스를 하는, 성적 쾌락의 낙원보다 훨씬 더 복잡한 함의를 지니게 됩니다. 순식간에 호수는 알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그 살인을 저지른 미셸 또한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이후에 영화는 프랑크와 미셸을 엮으면서 이들의 정사씬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호수는 여전히 변함없는 섹스 천국 같습니다. 그러나 형사가 등장해 사람들을 조사하고 다니면서 이 곳의 평화는 이내 깨지기 시작합니다. 이성애자들의 세계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만의 세계는 다시 한번 메이저리티 사회의 일시적인 섬으로 전락합니다. 형사는 프랑크를 탐문하면서 그의 이전 섹스 파트너에 대해 개인정보를 묻습니다. 프랑크는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서인지 이름도 직업도 취미도 사는 곳도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이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프랑크와 미셸의 관계에 이를 적용해보면 이 대답은 거의 사실입니다. 프랑크는 미셸에게 꾸준히 자기 집에 가서 잠을 같이 자자고 하지만 미셸은 그걸 거절합니다. 프랑크는 호수 건너편에 앉아있는 에릭에게 이런 저런 호숫가 바깥의 생활 이야기를 하지만 미셸과는 그런 대화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관객은 프랑크를 통해 미셸의 어떤 개인정보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가 살인을 한 범인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모든 걸 다 알려주는 것 같던 영화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관객들에게 다른 진실을 계속 질문합니다. 과연 그의 무엇을 알고 있는가. 결국 미셸이 에릭을 죽이고 형사마저 죽여버렸을 때, 영화는 살인범으로서 미셸의 진실을 가장 강렬하게 전달하지만 동시에 그가 그 정도까지 저지를 사람이라는 건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프랑크는 누굴 사랑했던 것인지 관객으로서 곱씹게 됩니다. 동시에 영화가 열린 결말로 끝나면서 관객은 프랑크가 살아남았을지, 아니면 끝내 미셸에게 살해당했을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호수 바깥의 인간들은 절대 그 세계를 알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호수 안의 사람들도 호숫가가 어떤 세계인지를 모르니까요. 어쩌면 프랑크가 무모해보이다싶을만큼 미셸을 외치는 것은 그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그 미셸'임을 확인하고 싶은 필사적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07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62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559
120579 동성결혼이 허용되어서는 안될 10가지 이유 [30] Keywest 2011.03.04 5165
120578 한국맥주는 왜 맛이 없을까? [42] 자본주의의돼지 2012.11.27 5165
120577 한예종이 세곡동으로 옮겨지나봐요... [7] 스티븐 신갈 2011.01.14 5165
120576 조건보고 하는 결혼은 살인죄인가 [61] 세멜레 2013.07.29 5164
120575 백재현 40kg감량 했군요. [10] 자본주의의돼지 2012.06.05 5164
120574 김수현 작가는 하석진을 왜 계속 벗기는가 [12] 달빛처럼 2013.01.05 5164
120573 전자책에 부정적인 이유 -_- [34] 7월9일 2010.09.03 5164
120572 비행기사고;최선임 승무원이라길래... [7] 메피스토 2013.07.08 5164
120571 듀나인) 파워포인트 2007에서 유튜브 동영상 삽입 방법 [4] underground 2015.03.18 5163
120570 진중권의 문화다방에서 언급된 서태지 이야기 [10] 마당 2014.11.21 5163
120569 설국영화 시사회 평이 안좋은건가요? [6] 큰거북이 2013.07.22 5163
120568 안후보 지지자의 현재 심경이 궁금하신가요 ; [50] 해변의여인 2012.11.23 5163
120567 우리 재혼했어요 엄청 웃기네요 [9] 자두맛사탕 2012.07.03 5163
120566 요즘 가장 싫은 광고 [22] 쏘맥 2012.06.27 5163
120565 커피점 인테리어 견적을 여섯곳에서 받아보니 - 첫번째 이야기 [15] 무비스타 2012.11.28 5163
120564 저는 다문화 정책에 반대합니다~~~ [60] 잉명12 2012.04.11 5163
120563 현재 지금 나우 미쿡 최신 조크 'ㅅ' [10] loving_rabbit 2012.10.18 5163
120562 구게시판은 언제 글을 읽을 수 있나요? [1] bunnylee 2010.06.04 5163
120561 외국인이 본 한국의 술 문화 [10] 화려한해리포터™ 2013.06.10 5162
120560 진중권, 책 리뷰를 의뢰한 중앙일보에게 똥을 주다 [7] 닥터슬럼프 2012.12.08 516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