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1 16:27
- 거의 반세기 전 영화네요. 1978년작입니다. 1시간 49분. 스포일러 없어요.
('텔레키네시스' 특집 기사가 실린 잡지 표지 같아요.)
- 어두컴컴한 방 안을 훑으면서 시작합니다. 우주기지를 세우려 달을 향하는 미국 우주인들 뉴스가 티비 소리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책꽂이엔 '존 몰라'(드립치고 싶다!!!)라는 작가의 책들이 잔뜩 보이구요. 누군가 손님이 들어오고, 혼자 티비를 보던 집주인은 티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어서 오라 그러는데 우리의 나아쁜 손님은 옆에 있던 조각상으로 사방에 피가 튀도록 퍽퍽퍽.
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아저씨가 주인공이에요. 뭔가 옛날 명탐정 포스를 풍기며 사체를 옆에 두고 현장을 조사 중이었는데, 희생자 존 몰라씨가 갑자기 살아나네요. 이게 뭐꼬! 하고 병원에 옮겨놨지만 뇌만 간신히 살아 있는 상태라 보탬이 안되고. 열심히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몰라씨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 중이었단 걸 알고 힌트나 찾아볼까 하고 찾아가요. 그리고 딱 봐도 중요하게 생긴 이 '존펠드'라는 이름의 미녀(!) 의사는 환자 비밀 보호 따위 아랑곳 않고 괴이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하는데...
(몰라 몰라 나는 존 몰라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ㅠㅜ)
- 그러니까 우리의 존 몰라씨는 맘에 안 드는 걸 째려보기만 하면 죽게 만들 수 있는 초능력자였던 것입니다. 아주 어려서 처음으로 능력을 각성한 후로 시시때때로 이걸 활용해왔죠. 그렇다고해서 뭐 완전 글러먹은 악당까진 아니어서 나름 본인 입장에서 그럴만한 놈들만 죽이긴 했습니다만 뭐 잘 했다고 이해 받을 정돈 또 아니구요.
영화의 2/3 정도는 우리 형사님과 의사 선생의 대화 -> 플래시백으로 이 존 몰라라는 인물의 과거지사를 구경하게 되구요. 나머지 1/3은 우리 몰라씨의 최종 계획을 막아내기 위해 두 사람이 고생하는 내용이에요.
(이것이 바로 'The Medusa Touch'의 참된 의미. 이미 넌 죽어 있다. 어떻게든!!!)
- 일단 가장 인상적인 건 이 존 몰라라는 인물의 능력이에요. 이게 뭐 어떻게 설명이 안 됩니다. 처음엔 염동력처럼 보이고 그런 식의 설명도 시도해 봅니다만, 가면 갈 수록 괴상해지거든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론 그냥 '저주'에 가깝습니다. 한 번 찍어 놓으면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죽는 거죠. 심지어 물체에도 작용하고 직접 보지 않아도 생각만으로도 작동합니다. ㄷㄷㄷ 그러니까 거의 '오멘'의 데미안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초능력물이라기보단 오컬트물에 가깝구요. 종교 의식 같은 건 전혀 없지만요. 암튼 능력이 이렇다 보니 영화의 기본적인 분위기는 호러로 갑니다.
(전 명탐정이자 유능한 백전노장 수사관입니다. 그렇게 생겼으니까요!!!)
- 앞서 말 했듯이 주인공은 형사니까 초반은 미스테리 / 수사물로 가요. 근데 어차피 열쇠 다발은 다 의사가 쥐고 있고 중요한 건 다 이 양반이 썰로 풀어주니 제대로 된 본격 수사 같은 건 없구요. 하지만 여기서 제 역할을 해주는 게 형사 역의 리노 벤추라입니다. 이 양반은 생긴 것도 목소리도 딱 옛날식 명탐정 내지는 의지의 경찰이어서 걍 이 사람이 코트 자락 휘날리며 돌아다니면 '음. 수사를 잘 하고 있군' 이란 생각이 들어요. ㅋㅋㅋ 물론 각본이 영리하게 맨 첫 등장씬에서 이 분의 똑똑함을 어필해주고 넘어간 덕도 있지만요.
의사 선생님도 괜찮아요. 수상할 정도의 예쁨으로 뭔가 영화를 더 고급진 느낌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관객들을 대신해서 우리 능력자님에 대해 알아가고, 놀라고, 공포를 느끼다 막으려 나서는 결심을 해주는 감정 이입용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물론 중요한 건 능력자와 경찰이 거의 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이 영화의 미인' 역할 같은 건 아니었어요. 리 레믹의 연기도 괜찮았구요.
(옛날 미녀들은 어쩜 이렇게 옛날 미녀처럼 생겼을까. 라는 바보 같은 호기심이 들게 합니다.)
-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리처드 버튼의 존 몰라입니다. 이런 캐릭터의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이 양반한텐 사연이 있죠. 어려서 학대 당하고 자라면서도 억울에 불운 투성이 삶을 살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데 익숙해지고... 하지만 그러다 결국 선을 넘어버린 후론 턱 없는 염세와 분노로 폭주하는 악마 비슷한 존재가 되는 건데요. 이렇게 '이해가 갈 듯 하지만 결국 악마 그 자체'인 캐릭터를 오버액팅 전혀 없이 폼 나게 잘 표현해줬습니다.
덧붙여서 몰라의 마지막 분노가 좀 재밌었습니다. 뭔가 좀 좌파 지식인들의 욕구불만을 대리 해소해주는 느낌이었달까요. ㅋㅋ 캐릭터 자체도 정치판과 사회지도층 실상을 잘 아는 지식인이라는 설정이었고. 작가님이 정치/사회 뉴스 보다가 빡쳐서 쓴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클라이막스의 액션이. ㅋㅋㅋㅋㅋㅋ
(헐리웃 블럭버스터 게 섯거라!!! 이젠 UK-액션이다!)
- 어쩌다 보니 배우 얘기만 하고 있는데 영화 자체도 크게 흠 잡을 데 없이 매끈하게 잘 만든 장르물입니다.
일단 스케일에 좀 놀랐어요. 이게 1978년에 나온 영국 영화인데 특수 효과도 시절 대비 어색하지 않게 잘 쓰면서 스케일 큰 볼거리가 적지 않게 나와요. 대충 스킵하겠지 싶은 장면들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직접 보여주는데 퀄도 괜찮고.
대화 - 회상, 대화 - 회상이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도 질리지 말라고 중간중간 포인트 장면도 넣어주고, 또 화면 연출 같은 것도 신경을 많이 썼더라구요. 형사와 대화 나누던 의사가 편집 장난으로 자연스럽게 바로 몰라와 대화 나누는 상황으로 전환된다든가.
딱 하나 아쉬웠던 거라면 몰라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 후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는 건데, 그것도 지루할 정돈 아니었구요.
(뻘소리지만 이 배우님 넘나 클레이 인형 같지 않습니까. ㅋㅋㅋ)
- 결론을 내자면.
옛날 영화라는 거 감안 안 하고 봐도 괜찮을만큼 재밌게 잘 만든 호러/스릴러 영화였습니다.
그냥 잘 만들었어요. 볼 거리도 있고 배우들도 좋고 연출도 좋구요.
덧붙여서 옛날 옛적 '주말의 영화' 최적화(?) 분위기 같은 게 있어서 그 시절 그런 영화들 추억 많으신 분들은 더 재밌게 보실 듯 합니다.
그럼 이만.
+ 다들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리 레믹은 '오멘'에도 나왔죠.
며칠 전에 그레고리 펙 영화를 본 김에 이것도 다시 볼까 했더니 디즈니 플러스에 있나 보네요. 하하.
왓챠, 티빙,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올레 프라임무비팩에 디즈니 플러스까지 구독하는 보람이 있... (쿨럭;)
...이라고 적고 신나게 틀어봤더니 2006년 리메이크 버전이었습니다. 하아... ㅠㅜ
++ 21세기 드라마들을 너무 봐서 그런가
이 두 분 넘나 연인 같아서 보는 내내 신경 쓰였... (쿨럭;)
2022.07.21 17:04
2022.07.21 17:36
친숙한 얼굴이 나오니 감정 이입이 더 될지두요. '스크림'처럼 그걸 이용해서 뒷통수를 치는 경우도 있겠고... ㅋㅋㅋ
사실 옛날 영화 관심 많은 사람 아니면 이 영화 주인공 3인방이 다 유명 배우란 것도 모르겠죠. 세월!!!
2022.07.21 17:12
ㅎㅎ 저는 이 영화를 서울 중앙극장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내용은 가물가물...
2022.07.21 17:38
오오 개봉관에서 보셨다니 왠지 대단(?)하시다는 느낌이!! ㅋㅋㅋ
재밌는 영화긴 한데 뭐 딱히 누구 인생 작품 될 정도로 임팩트 있는 영화는 아니어서요. 차라리 티비 방영으로 반복 감상한 사람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 같아요.
2022.07.21 17:31
어릴 때 비디오 케이스는 무서워 보였는데, 정작 세월이 지난 후에 봤을 때는 별로 무섭지도 않았지요.
리처드 버튼은 말년에 별별 범작과 졸작들에 나오다가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7년 영화 [에쿠우스]로 7번째로 오스카 후보에 오르면서 재기했지만 이 영화와 [엑소시스트 2]로 또 나락의 길을 걸었지요. 그나마 마지막 영화가 존 허트 주연의 [1984년]이었으니 다행.
참고로, 술친구였던 피터 오툴처럼 만년 오스카 후보였는데 오툴만큼 오래 살았으면 같이 공로상 받았겠지요, 아마.
2022.07.21 17:41
엑소시스트2야 그렇다 쳐도 이걸로 나락이라니 좀 슬프네요. 재밌는데!! 제가 또 장르 취향 따라 너무 관대했나요. ㅋㅋㅋㅋ
2022.07.21 17:55
주말의 명화였나 tv에서 봤지만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맞아요. 과거 공중파 '안방극장'용 영화 있지요. 하한선이 있어서 기본 재미는 보장했고 감독보다 알려진 배우들을 내세우는 느낌도 좀 있었던 듯.
리노 벤츄라는 형사 간지 전문 배우로 영국 영화에 특별히 모셔 왔나봐요ㅎ 배우들의 아우라만으로도 볼만할 것 같습니다.
2022.07.21 19:02
거기서 뭔지도 모르고 봤다가 훗날에 명작 내지는 최소 네임드 영화였다는 걸 알게 되는 재미도 있었구요. '해리슨 포드의 서기2019년'이라든가. '컴퓨터 환상 여행'이라든가. 제 청소년기 정신 건강과 가치관 형성에 심대한 데미지 영향을 준 영화들이 대부분 티비로 접한 안방극장물들이었어요. ㅋㅋ
리노 벤추라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때문에 제겐 형사 이미지인데 사실 다른 영화들은 잘 몰라요. ㅋㅋ
2022.07.21 20:01
리노 벤추라는 사실 범죄자 역할로 더 보았는데 저에겐 '그림자군단'의 레지스탕스 대장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혹 안 보셨으면 추천드려요.
2022.07.21 21:51
2022.07.21 18:46
2022.07.21 19:07
젊은이들(?)도 옛날 영화 보며 그런 느낌 받을지 궁금합니다. 저도 그런 느낌 받는데 젊지가 않아서!!!! ㅠㅜ
2022.07.21 19:28
2022.07.21 21:48
2022.07.21 21:10
제 어머님께서는 눈동자색이 밝으면 영리해보인다고 하셨는데 저.. 리처드 버튼의 회색빛연두색?은 무섭게 보이네요
2022.07.2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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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멘> 정도는 아닌데 이상하게 "유명" 배우가 나오면 뭐랄까 공포의 강도가 훨씬 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연기력 때문이려나요. 저 포스터는 거의 "햄릿" 급이네요. 뿔테안경님 배우님은 <대탈주>를 볼 때마다 그저 헛웃음이 나오는데 사진이 익살맞게 나왔네요. TV 첫 방영이 1983년이라...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