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어디인가' 를 봤어요.

2022.08.18 23:13

thoma 조회 수:447

나의 집은 어디인가(Flug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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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덴마크 감독이라고 합니다.

감독이 고등학교 동창 '아민'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아민은 십 대 초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덴마크로 탈출한 난민이었습니다. 지금은 학계에서 연구자로 자리잡은 거 같아요. 가족과의 탈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개인의 성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함께 비중 있게 이야기합니다. 실제 경험을 당사자가 얘기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덴마크에 정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신에 대한 거짓 정보가 문제될 수도 있고 사생활 보호 문제도 있어 에니메이션과 자료화면으로 표현되는 영화입니다. 


아래 문단은 아민의 탈출 경과인데 영화를 보실 예정이거나 지루한 글을 피하고 싶으시면 건너뛰어 주세요. 저도 적으면서 뭐 시시콜콜 다 적고 있냐고 혼잣말을...ㅎㅎ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때(1991-2년쯤?) 아버지는 정치적 이유로 진작에 행불이 돼 있었고 큰형은 징집을 피해 일찍 스웨덴으로 이주해 있었는데 내전이 격화되어 어머니와 누나 둘, 작은형과 자신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은 당장 갈 수 있었던 나라인 러시아로 출국합니다. 러시아에서 큰형이 구해놓은 아파트에서 일 년을 불법체류자로 외출도 자유롭게 못 하고 숨어있다시피 지냅니다. 스웨덴에서 청소일을 하는 큰형이 돈을 모아 우선 누나 둘이 밀입국주선자를 통해 출발하는데 화물칸 컨테이너에 밀착되어 실려가며 험한 고생을 합니다. 그 다음 시도된 어머니, 작은형과 자신의 탈출은 트라우마를 남길 만큼의 고생만 경험하고 무위로 돌아갑니다. 해상에서 낡은 배로 표류하다 에스토니아 당국에 붙잡히고 수용소 생활을 한 후 다시 러시아로 돌려보내진 것입니다. 이후 러시아에서 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막막하고 괴롭게 됩니다. 결국 작은형이 막내인 아민만이라도 탈출시키려 합니다. 아민은 어머니와 작은형의 희생으로 큰 돈을 들여 가장 안전한 경로로(비행기로) 러시아를 떠날 수 있었어요.


아민은 덴마크에 입국하면서 밀입국업자가 시킨대로 가족 전원이 내전 중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얘기해야 되돌려 보내지지 않는 겁니다.

그 이후로 수십 년 동안 대외적으로 가족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어요. 그 자신은 형제들에 의해 보호 받았고 미래가 주어졌는데 누군가가 물으면 다 죽었다고 말해야 하니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어요. 타인에게 말하지 않았던 가족과 성정체성 얘기라 감독이 조심스럽게 진행하기도 하지만 아민이라는 사람 자체의 개성도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부드러워 보이더군요. 추한 일이나 모진 일이 직접 전시되지 않는 점도 좋았습니다. 아민은 두 누나들처럼 컨테이너에 밀폐되어 죽을 뻔한 극단적인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십대 초반에 겪을 고생으론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지나친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런데 잊을 수 없는 일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장면이 표류 중 노르웨이 여객선과 맞닥뜨린 일입니다. 아민은 거대한 여객선을 올려다보며 구해 달라고 소리지르는 동포들 사이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난민들을 내려다 보는 유럽 사람들을 망연히 보았습니다. 그때의 수치심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칠고 난폭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개인의 마음에 새겨지는 흉터는 다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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